「フカノウ」なんて言葉イラナイ! (from 水樹 奈々 アオイイロ)


아래 내용은 주말 조선일보 위클리 비즈에 있던 내용입니다. 무단펌입니다만, 너무 내용이 맘에 들어서 일단 보관을 위해 옮겨둡니다. 시간 나실때 한번 읽어보시길.


“소비자를 자극하라 관심이 곧 돈이다”

세계 3대 경영석학, 톰 대븐포트 교수

2차 대전 종전(終戰) 후 미국인들로 하여금 적대국 일본에 푹 빠지게 했던 제품이 혼다오토바이였다. 성공의 비결은? “시행착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CEO가 시행이 얼마나 잘되고 있고, 착오가 제대로 고쳐지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본 결과였다.”(대븐포트)

세계 최고의 통신장비업체인 시스코. 1994년 이후 최근까지 10여년 동안 무려 40~50건의 인수작업을 성공시켰다. 그 비결은? “새로 인수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직원의 관심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시스코는 인수한 기업에 인위적으로 칼을 대지 않는다.”(대븐포트) 세계적인 경영학계 ‘스승’ 톰 대븐포트(Thomas Davenport·52) 교수는 “복잡한 세상에서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야말로, CEO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며, 사업 성공의 비결”이라고 인터뷰 말문을 텄다.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관심은 곧 돈’이라는 등식을 재강조한 셈이다.

피터 드러커·톰 프리드먼과 함께 ‘세계 3대 경영 구루(guru·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대븐포트 교수. 하버드대 박사 출신인 그는 하버드 경영대학원·보스턴 경영대학원·다트머스 터크경영대학원 교수직을 거쳐 미 밥슨 칼리지(Babson College)에 스카우트돼 최고연봉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기업들은 ‘관심’을 잡기 위해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있을까? 그는 ‘세밀한 심리학적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 인텔·모토로라엔 대규모 인류학 연구그룹(anthropologist research group)이 있다”며 “글로벌 기업의 필수 조건은 세계 곳곳의 소비자들을 분석하고 이들의 욕구를 알아내는 것인데, 한국 기업들은 과학자·엔지니어들은 많은 데 비해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는 인력은 부족하다”고 충고했다.

미국에서 12시간을 훌쩍 날아와 새벽 5시쯤 인천 공항에 도착했지만, 그의 얼굴에 ‘피곤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휴대폰과 인터넷이 제대로 안 되는 비행기에 앉아 있었더니 머릿속 배터리가 충전돼 산뜻하다”고 했다.

그를 통해 세계적인 경영 석학들 얘기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또 다른 세계적 ‘경영학 구루(guru)’ 톰 피터스의 근황은 이랬다. “톰의 부인이 보스턴에서 사업을 해서 가끔 들를 때마다 저녁을 먹는데 참 특이한 친구”라며 “그는 매우 똑똑해서 가끔씩 머리에서 빛이 나더라.”

그의 우상은 단연 고(故) 피터 드러커다. “정말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제 역할 모델이죠.” 그의 눈이 잠시 ‘반짝’거렸다. 그는 “내가 그에 대해 갖는 유일한 경쟁력은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뿐”이라며 드러커를 ‘주크 박스’(juke box)로 표현했다. “무슨 질문을 하든지 그에게는 늘 완벽한 답이 준비돼 있었어요. 마치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과 같았죠.” 그래서일까? 그 역시 어떠한 질문에도 자신 있는 답변들을 쏟아냈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은 미래 경영 환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세계 3대 경영 지도자’가 한국 경영자들과 기업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상품개발 전문가·엔지니어, 현장에 내보내라


52세의 나이. 하지만 팔팔했다. 하도 강해 보이기에 약점을 하나 찔러 봤다.

―한국인들은‘경영학의 대가’하면‘피터 드러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듯한데.

“그래서 온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앞으로 더 자주 와야겠네요. ‘관심의 경제학’을 쓴 사람이, 정작 한국에서‘관심’을 끌지 못했다니 반성해야겠네요.(웃음)” (그는 어떤 질문에도 따분해 하지 않았다. ‘관심의 경제학’저자답게 하나하나에 큰 관심을 표시했다.)

―’한국’에 대한 국가 브랜드 이미지는 어떤가요?

“얼마나 솔직해야 할까…. 일단 이렇게 얘기할게요. 한국의 경우 우수한 인터넷 인프라와 글로벌 기업들로 인해 세계적으로 이미지가 상승하고 있어요. 하지만 좋지 않은 쪽으로 관심을 끄는 이슈도 두 개가 있어요. 하나는 북한과 관련된 문제예요. 이로 인해 한국 기업들의 이미지에 악영향이 있을 수도 있죠. 사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어요.(웃음)”

―또 하나는 뭔가요?

“(한국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몰라도) ‘게임 산업 폭발’이에요. 한국의‘게임 중독’에 대해 특히 많은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져요. 심각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와 관련해 미디어에서 주저리 주저리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해결책이요? 어제 기내(機內)에서 미국의 유명한 시사 프로그램‘60분(60 minutes)’을 봤는데, 게임과 사회성의 연관 관계에 관한 것이었어요.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을위해 한국의 게임 산업이 단순히‘외로운, 고립된 소년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어요.”(웃음)(이 대목에서 한국 IT기업의 대표격인 삼성전자, 그것도 이건희 회장에 대해 물어봤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아십니까?

“알지요. 왜요?”

―이건회 회장은 직원들에게 매년 하나의 화두를 던집니다. 그런 단어에‘창조경영’같은 것은 있어도 청소년에게 해를 끼칠 만한 게임중독 같은 단어는 없습니다. 당신이 한국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싶은 올해의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성찰’(reflection)! 불교용어에 가까워요. 넘치는 정보 속에서 당신의 몸과 마음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선 항상 성찰이 필요합니다. 늘‘생각할 공간’을 남겨 두세요. 정보 속에서 생각하는 사람만이 앞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터질 때까지 생각하면 곤란해요.(웃음)”

―한국은 요즘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고 난리입니다.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어떤가요?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평가할까? 먼저 내가 물어 볼게요. ‘당신들(한국기업들) 상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얼마나 세밀히 관찰하느냐?’고. ‘경쟁력이 있다, 없다’를 묻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보자고요. 미국에서 가장 먼저 ATM기기를 도입한 건 케미컬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씨티은행이 이 분야에서 케미컬은행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어요. 이유요? 씨티은행은 주도면밀하게 소비자들이 어떻게 ATM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 관찰했습니다. 이에 따라 고객의 기호와 거래패턴에 맞게 기기와 거래 화면 디자인을 개선해 나갔어요.”

■삼성·LG ‘다음 제품이 뭐 있는가?’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뜻인가요?

“대답은 충고로 대신하겠습니다. 상품을 개발하는 전문가들과 엔지니어들을 현장에 내보내 자신들이 만든 상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면밀하게 관찰시키세요. 한국기업들이 만든 상품들 중에는 소비자들의 관심도 못 받고 그냥 사라지고 마는 기술과 상품이 많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나요?

“(그는 끝까지 한국기업들의 예를 들기를 주저했다.) 유럽의 3G(3세대 이동통신기술)가 바로 그 예예요. 모든 유럽 통신 기업들이 3G를 공급하기 위해 너도나도 네트워크와 기술을 개발했지만, 솔직히 아무도 이를 원하지도 않았고 사용하지도 않았죠. (웃음) 소비자들의 삶으로 깊숙이 파고들어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게 경쟁력의 핵심이죠.”

―그렇다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이게 제일 머리 아픈 부분이에요. 사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소비자 자신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기자를 보며) 지금 당신이 원하는 제품이 뭔지 콕 집어서 말할 수 있나요? (웃음) 하지만 역시 가장 쉬운 방법은 견본품(prototype)을 보여 주는 것이죠. 애플의 아이팟은 MP3에서 소비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 많다는 것에 착안, 최대한 간소화해 대성공을 거뒀죠.”

―전반적으로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삼성과 LG를 미국인들이 이젠 너무 잘 알아요. 제가 미국에서‘베스트바이’(BestBuy) 컨설팅을 하면서 삼성·LG 제품들을 많이 봤어요. 특히 미국 사람들은 이들의 평면 TV에 열광하더군요. 하지만 그 이외엔 뭐가 있죠? 그 뒤에 뭔가 하나‘터져’줘야 할텐데. 그게 없으면 결국 이들의 미래도 위협 받을 수 밖에 없어요.”

그는 (미안했던지) 돌연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는 녹음기를 보고 과거를 회상했다. 난데없는 피터 드러커와의 추억 얘기였다. “한번은 피터 드러커 교수를 비행기 안에서 인터뷰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출발 몇 분 전에 녹음기가 고장 난 거예요. 그래서 인터뷰내내 그가 하는 말을 모두 기억하려고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나요. 다행히 드러커 교수가 그때 많이 늙어서 기억력 감퇴가 왔는지 했던 말을 다 기억 못하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었죠. 난 기자가 됐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다시 웃음)”

■한국 기업 CEO들‘일하는 시간, 왜 그리 긴가?’일침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물었다.

―한국은 세계적인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핀란드와 함께 말이죠.(웃음) 한국은 현재 이 분야에서 다른 나라들과‘마지막 전쟁’(last war)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전쟁은 정보의 생산 측면이 아닌, 소비 측면(consumption side)에서 이루어질거예요. 즉 지금까지는 정보 공급자가 돈 버는 세상이었다면, 이젠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 돈 버는 날이와요. 그것도 곧.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거죠.”

―정보 소비자가 돈을 번다고요? 아직까지 감이 잘 오지 않는데….

“제 친구 중에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100대 기업의 CIO(Chief Information Officer)가 있어요. 그는 항상 수많은 초대를 받는데, 최근엔 캐러비언해(海)의 무료 요트관광 제의를 받기도 했죠. 그가 할 일은 딱 하나였어요. 단순히 배를‘타기만’하면 됐어요. 몇몇 IT 협력업체(vendor)들 이야기를 몇 시간 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이는 관심을 끌기 위해 정보 제공자가 정보 이용자에게 돈을 지불하는 매우 극적인(dramatic) 예예요.”

―저희 기자들이나 대학 교수들도 특정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고, 비슷한 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특별한 경우 같지는 않은데요?

“내 얘기는 정보화 시대에서 한국 기업들의 의식을 바꾸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게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콘퍼런스(국제회의)에 가기 위해 돈을 지불하죠? 하지만 앞으론 콘퍼런스에 나타나는 것(show up)만으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길거예요. 특히 당신이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비즈니스상 결정권을 갖는 사람(decision maker)일 경우 말이죠. 미래에 꼭 그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국 기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국에 와 컨설팅을 하면서 놀란 게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유독 한국 CEO들의 업무 시간이 살인적으로 길다는 거죠.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기업 고위 관계자들만큼 밤이 깊을 때까지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고 있는 경우는 못 봤어요.비효율인가요? 아니면 일종의 충성심 표시인가요? 이 참에 왜 그런지 연구나 해 봐야겠네요. 결과는 비밀리에 알려 드릴게요.(웃음)”

■소비자가 원하는 것‘나만의 메시지’

다시 화제를 돌렸다. 이번엔 그의 저서‘관심의 경제학’에 등장하는‘관심경영’에 관해 물었다.

―‘관심’이란 구체적으로 뭘 뜻하나요?

“이제는 관심도 돈 주고 사는 세상이 올 겁니다.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지시가 담긴 메모를 직원들이 관심 있게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했죠. 이러니 관심이 돈 아니겠어요?”

―관심 끄는 메시지는 어떤 겁니까? CEO들이 대단히 궁금해 할 겁니다.

“누구나 보스라면 자신의 메시지가 직원들로부터 관심을 끌기를 원할 겁니다. 문제는 그게 뭔지 모른다는 거지요. 결론은? 메시지를 개인화(personalization) 하세요. 모든 사람들은‘나만을 위한 메시지’를 원하죠.”

―개인화된 메시지란 어떤 것인가요?

“CEO가 임직원들에게 대규모 행사 초청장을 발송한다고 치자고요. 또 참석률을 최대한 높이고 싶다칩시다. 이런 상황이라면 단체 메시지가 아니라 개개인별 메시지를 담는 거예요. 초청 내용은 비슷하더라도 초청장의 첫 부분에‘당신의 개가 죽었더군요. 애도를 표합니다.’‘이혼하셨다고 들었어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신가요’, ‘파티에서 봤는데 살을 많이 빼셨더군요’…. 이런 이메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확 잡아 끌 수 있어요.(웃음) 끝에 가서‘3주 뒤에 이러한 행사가 있는데 그때 꼭 얼굴 뵙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말미를 장식하면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죠.”

―혹 돈 되는 사업 하나 귀띔해 줄 수 있나요?

“공짜점심은 없습니다만, 하나 말해 줄게요. ‘생각 할 수 있는 공간’비즈니스가 매우 큰 산업이 될 거예요. 대기업 CEO들에게 최고 호화판 휴가(ultimate luxury vacation)가 뭔지 아세요? 인터넷이 안 되고, 통신망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내는 거예요. 머릿속 배터리를 충전시키기 위해서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황제 빌 게이츠 역시 인터넷과 통신이 두절된 곳에서‘싱크 위크’(think week)를 가져요. 참 아이러닉(ironic)하죠? 최근까지 계속됐는데‘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는 부인의 반발로 요새는 안 가는 걸로 알고있어요.(웃음) 앞으로도 쉬러 도망가고, 부인이 쫓는 해프닝이 잦을 겁니다. 유망 비즈니스가 바로 이런거예요.”

관심경영이란

“오늘날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담긴 정보는 15세기에 쓰인 모든 문서를 합한 것보다 많다.”톰 대븐포트는‘관심의 경제학’에서 현재의 정보홍수를 이같이 표현했다. 1472년 세계 최고의 대학도서관이던 케임브리지대학 퀸스칼리지 도서관의 장서는 총 199권. 그나마 양피지에 쓰여 텍스트는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심의 경제학이 정의하는 관심이란“넘치는 정보 중 특정 정보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자, “세상의 북적북적한 혼란과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 필요한 결심과 행위 사이의 끊어진 고리”다. 사람들은 다양한 정보들을 지각하게 되는데, 이 중 특정 정보에 유의하게 되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영자들이 당면하는 문제도 모두 관심의 방정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소비자·주주·예비직원등의 관심을 어떻게 사로잡느냐 하는 것이 좌변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에 대해 관심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우변이 된다.



이분이 쓴 '관심의 경제학' 이라는 책이 몇달전에 번역되서 나와있습니다. 아마 다음달 책 주문때는 읽어볼것 같네요. 그리 길지 않은 인터뷰 내용입니다만, 그 내용에 정말 얻을게 많았습니다. 세계의 석학들의 생각들도 하나씩 알아가면 앞을 바라보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s) 그나저나 이렇게 막 퍼오면 나중에 문제 생긴다고 하던데..뭐 문제된다고 경고글이 날라오면 후닥 지우겠습니다.(정작 이거 조선일보 검색에서는 진짜 안 나옵니다. 엄한데서 찾았다는...신문을 스캔해서 올리라는걸까요 ㅎㅎ)
ps2) 조선일보의 정치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외 면들은 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주말마다 발행되는 위클리 비지니스 는 정말 내용이 참 좋습니다. 혹 집에서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주말에 오는 그 섹션만은 챙겨서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2006/12/10 20:26 2006/12/10 20:26

일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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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존재하는 이런저런 산업를 크게 둘로 나누어보면 이렇게 나뉜다.

1. 제로섬 산업.
2. 논제로섬 산업.

제로섬 사업은 간단히 증권시장을 연상하면 된다. 누군가 웃는다면 누군가는 우는 체제이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산해 판매하는 산업이 아니라 기존의 부가가치를 운용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자신에게 이동시키는 산업이다. 때문에 이 산업의 종사자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국가의 부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상자안의 빵이 옮겨다닐뿐 빵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논제로섬 산업은 반대이다. 이 산업의 목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생산해 그것을 판매하여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 업계 종사자의 부는 곧 국가의 부다. 논제로섬 산업이 발달하면 그것은 곧 국가의 부로 연결된다. 흔히 말하는 IT업계가 바로 이쪽이다. 언론에서 툭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IT에 있다'라고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에서 우대받는 직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주로 끝에 '사'가 붙는 의사, 약사, 변호사, 판사, 회계사, 변리사 등등은 물론 딜러, 펀드매니저 등의 금융이나 대기업의 간부, 전문직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찾아보자. 이중에 제로섬 직업은 몇이고 논제로섬 직업은 몇일까?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엘리트 주의에서는 논제로섬 직업은 대우받지 못한다.

관념적인 말이 아니다. 내 주위의 일이다. 흔히 말하는 그 잘난 일류대의 공학, 과학인들이 과연 얼마나 논제로섬 직업에 종사하고 있을것 같은가?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우수한 IT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죄다 제로섬 게임에 미쳐(혹은 떠밀려) 아무생각없이 달려가고 있다.

서울대 공대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면 실무로 뭘하는지 아나? 전화받는다. AS부서에서. 대기업 기술개발 관련은 해외파가 아니면 명함도 못내밀고 실무생산은 눈높은 신입사원들이 기피한다. 지금 대한민국 IT가 대단하다 떠들고 있지만 실제 업계 종사자들은 다 안다. 현재의 강세는 대한민국의 지식적 힘이 아닌 해외의 힘이며 대한민국의 자본이 아닌 해외 자본의 이익이다. 그나마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알기쉽게 예를 들어보자. 가장 IT스러운 프로그래머의 세계를 까발려본다.

대한민국 프로그래머중 40 넘어서까지 현역(코딩활동)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거의 제로라 보면 된다. 일반적인 업계에서는 보통 40을 업무의 전성기라고 한다. 경험과 패기와 능력이 조화를 이룬 시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프로그래머들은 모두 40 이전에 어떻게 해서는 발을 빼려 아우성친다. 아니면 해외로 나가든가. 도대체 왜그럴까.

프로그래머는 전문직이다. 그런데 대우는 단순노무직 대우를 받는다. 하루 10시간 근무, 주 6일출근하는 2년차 프로그래머 연봉이 얼마일것 같나? 업계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가장 열악하다는 게임업계를 들자면 보통 연봉 2000이 안된다. 1800~2000사이를 넘나든다. 세칭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들의 딱 반이다.

문제는 인센티브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뛰어난 아이디어와 실력으로 좋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부자가 된 프로그래머들이 널리고 널렸다. 거기가면 50대 프로그래머들도 발에 채인다. 왜냐고? 부자가 될 기회가 많으니까.

그런대 한국은 웃기게도 대박이 나오면 그 열매는 경영진들이 다 가져간다. 개발직 중에서는 기획자만이 그 단맛을 볼 뿐,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 파트는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인센티브? 허황된 꿈이다. 한국에서는.

해외 프로그래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쪽에서는 이런 한국의 IT문화를 신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어느 업계에서건, 어느 분야에서건 스타는 있다. 그 스타의 모습을 통해 신입들은 의욕을 다지게 되는데... 생각해보라. 한국에 스타 프로그래머가 있는가? 유일(말 그대로 유일)한 이름이 안철수다. 그러나 그분도 얼마전 부패청산 어쩌고 협의에 맞아 쓴소리를 남기셨다. 얼마나 한스러우시면 그럴까. 명색이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가장 IT스러운 프로그램 분야에서 한국은 스타가 없다. 즉 새로 업계에 발을 붙히는 사람들이 꿈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전문지식과 실력과 막중한 근무는 요구하면서도 그 결과를 돌려주는데는 인색하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실제 기술개발하고 코딩하는 사람들중 과연 세칭 일류대 출신이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기업 연구소라면 모를까. 그 외는 전멸에 가깝다. 엘리트라 자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자가 붙는 직업이나 대기업으로 가 실무와 관계없는 관리쪽에 들어간다. 물론 학력이 실력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기준에 맞추어 생각한다면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모든 IT 산업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실무진은 업계의 허리다. 그런데 그 허리가 너무나 부실하다는 점이 문제다. 대한민국은 모래위에 남의 돈 빌려 대궐같은 IT집을 지어놓고 '나좀봐라' 떵떵거리는 모습이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지금이야 몇몇 대기업의 약진이라는 화려한 포장지가 있지만 이것이 과연 얼마나 갈까. 그 대기업의 약진도 따지고 보면 해외의 기술력과 자본에 반이상 종속된 상태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그런데 어떻게든 경영진과 정치인들은 이것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자 취약점은 외면한채 과대포장시켜 홍보하기에만 들떠 있다.
더불어 대기업의 횡포도 끝이 없다. 이미 대기업 노조의 밥벌이를 하청업체가 책임진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불어 하청업체의 영업이익이 조금이라도 우수하면 바로 대기업의 감찰단이 들이닥친다는 사실도 안철수님의 인터뷰로 까발려졌다. 중소업체가 대기업에 제안서 하나 넣어볼라치면 전 사원의 학력, 경력등은 기본적으로 첨부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웃기는 비상식이 대한민국에선 상식으로 통한다. 가장 국제화되었다는 IT업계에서 말이다.

얼마안가 망할 것이다. 거품이 빠지고 그나마 버텨주던 기술개발인들이 못보티고 은퇴하는 순간이 대한민국의 IT가 끝장나는 순간이다. 정부와 기업들도 한몫하기로 했다. 그나마 경쟁력의 근원중 하나이던 인터넷을 종량제로 바꾼다고 하니 않는가. 정보와 이익의 독점이 미덕이라는 제로섬 산업의 마인드가 이제 논제로섬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솔직히, 나는 즐겁다. 업계의 인력부족이 심각해지고 질적, 양적인 공백이 심화될수록 나는 즐겁다. 세칭 일류대 공대 나와 동기들과는 달리 돈키호테처럼 벤처로 뛰어들때만 해도 상황이 이럴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물론 일하기 시작한 몇개월간은 그 암울함에 어려워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느껴진다. 의욕이 현실앞에 무너지나 걱정도 했지만 점점 늘어나는 스카웃 제의에 근심은 사라졌다. 어디든 그렇지만 희소성은 늘 각광받기 마련이니까.

대한민국의 영재들이여, 부디 나를 위해 계속 IT를 기피하고 경영이나 '사'자로 가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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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 http://www.okjsp.pe.kr/bbs?act=VIEW&seq=54965&bbs=bbs6&keyfield=content&keyword=&pg=0

약간 긴 글입니다만, 분명 저도 이 동네에서 일해오면서 느끼고 잇는 문제점들을 잘 이야기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나쁜 쪽으로만 보는 관점은 그리 좋은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IT는 해외의 그것과 좀 다른 양상을 보이는건 분명합니다. 이래저래 인터넷의 도움으로 저도 해외쪽의 IT 종사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도 할 수 있게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보면 참 뭔가 애매하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까놓고 IT 중소기업의 연봉은 낮습니다. 물론 비교 대상이 뭐냐의 문제이겠지만, 소위 비교대상이 언제나 언론을 보면 삼성, LG, SK와 같은 대기업 연봉을 위주로 하고 있기에 그 차이는 더 합니다만...
최근 저도 비슷한 이유로 대기업으로의 고민도 해봤습니다만, 제 일 스타일과 성격상, 그리고 아직은 제 자신이 젊다고(^^) 느껴서리 이것저것 더 해보고 싶은 희망으로 인해 일단 현재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자리만 바꿔도 받는 임금의 앞자리가 바뀌는게 현실입니다. (권해주신 분께는 죄송하지만요~.~)

더불어 저분이 말한데로 정말 생산직보다도 낮은게 현 중소 IT 업체의 실상입니다. (더우기 지방 IT업체는 정말 최저 임금을 향해 달려줍니다...실제 일하시는 몇몇 분들에게 듣고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사실 막 커나가는 조카들이나 사촌 동생들에게 전 이 분야에 대해 그리 잘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아니 하려면 애초에 나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자신을 위해서도 분명 득이 될꺼라고 생각하니깐요. 슬픈 현실입니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사회라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겠으나, 현실은 현실이니깐...그러면서도 저 자신은 제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무언가 계속 새로운걸 찾아내고 만들어가고 하는게 재미있어서 계속 이 일에 있는 것이니깐요. 그게 웹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남들이 쓰기 편하게 한 것이라든가, 회로도 봐가며 내가 만든 코드로 인해 기계가 동작하는 걸 보며 신기해했다던가, 남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겜을 만들어보겠다는것이던가...이러저런 경험을 해보면서 자꾸자꾸 이 세계의 매력도 느껴보고 한편으로 아직도 공부할게 많구나를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게 즐거울때가 솔직히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 구조대로는 무언가 희망이 애매하다는건 인정합니다. 인정할건 인정하고 그안에서 또다른 무언갈 찾아내는게 앞으로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운 길로 이 길을 택하는 분들께는 한번더 고민해보길 권하는게 현실같고, 그래도 하겠다면, 서로 잘 나갈 수 있게 도우며 해나가는게 현재로서 제가 이 동네를 보는 관점 같네요.
가능하다면, 대한민국에서 IT 종사하는 사람도 장가가기 좋은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회사고민 문제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딱 한마디로 결론을 들었습니다. '옮기면 장가가기는 좋겠다'...'뭐 그래서 갈 장가라면 안가는게 더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아마 전 계속 컴과 애인해야 할 운명인가 봅니다...ㅎㅎ)
2005/04/01 10:59 2005/04/01 10:59

그저 웃음만~

click해서 크게 보세용

누군가 만든 종량제후의 인터넷 페이지 모습 인듯합니다...
보다가 군데군데 하도 잼난게 많아서 사무실에서 멋지게 웃어버렸습니다...
종량제...뭐 말도 많고 앞으로 어찌될지 확실치도 않지만...
그때 가서 생각해보죠..지금은 다른것도 머리 아픈게 많은데 말입니다...에구..
2005/03/29 17:26 2005/03/29 17:26

포터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가 계속 PMP라는 용어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들고 있다. PMP는 MP3 플레이어에서 동영상 재생까지 가능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제품으로 선보였다. 하나의 파생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시장 자체가 아주 초기 단계라 혹자들은 시장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 될 것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제품들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핵심 기능이 동영상 재생이 아니라는데 있다. 올해 중으로 출시 될 PMP 제품들의 기능을 보면 PMP 본연의 기능인 동영상 재생 부분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보다는 다른 제품에 있는 기능을 PMP에 이식하는 쪽으로 많이 진행되고 있다. 3가지 방향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1. 자동차용 네비게이션 탑재.
2.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TV수신 기능 탑재
3.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기능 탑재.

궁극적으로 이 모든 기능이 PMP에 한꺼번에 탑재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제품이 출시 될 때쯤에 이 제품을 구입할 고객들은 동영상 재생을 위해 이 제품을 구입하는 것 보다는 DMB 디지털TV를 보기위해, 자동차용 네비게이션으로 이용하면서 기타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기때문에, 혹은 휴대인터넷을 이용하면서 부가적으로 동영상 재생이나 디지털TV를 보기 위해 등의 이유로 제품을 구입할 것이라는 것이다.

1년 후에도 PMP 업체들이 이런 제품들을 PMP라고 홍보할 수 있을까? 1년이 짧으면 2년 후를 생각해 보자. 휴대용 디지털TV인데 동영상 재생도 되고 MP3 재생도 되고 사진도 볼 수 있어요...라고하면서 판매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TV가 강조된 제품의 경우 '휴대용 다기능디지털TV' 정도로 이름 붙이는 것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궁극적으로 동영상 재생보다는 추가될 기능들에 더 매리트가 있는만큼 앞으로도 PMP라는 카테고리를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by Betanews.net

최근에 회사에서도 주변의 몇몇분도 PMP 라는걸 사셔서 들고 다니는 걸 보았습니다. 사실 뽀대나는 제품은 상당히 뽐뿌가 될 정도로 뽀사시~(^^) 합니다만...

왠지 제 생각에도 저위의 기사 글의 제목처럼, 과연 이 애매모호한 기계가 어느정도나 더 퍼질지는 의문입니다만, 뭐 네비게이션 용도는 참 좋게 보입니다...DMB는 차타고 무슨 TV냐 라는 심정이고..와이브로는 차라리 타블렛 PC가 더 유용해보이니...

PDA로도 동영상은 볼 수 있습니다만, PMP의 장점이라면 포멧 변환 거의 없이 사이즈 변환 거의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일텐데...그 장점에 비해 너무 큽니다.--; 지하철에서 몇번 여러가지 PMP를 들고서 영화/애니를 보는 사람들을 봤는데...상당히 난감한 사이즈더군요...가격도 싸다고는 못하겠고...

뭐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거라고 생각하지만, 제 개인 생각에도 왠지 반짝 제품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mp3p처럼 또 우르르 나와줘서 가격을 다운 시켜줄 그런 스타일의 제품도 아닌 것 같고...

요즘들어 가끔 지하철에서 PMP를 보다가 이런 기사 글을 보니 괜히 별 생각이 다 들어서 한번 끄적여보았습니다...더불어..한동안 글을 안썼더만...뭐하고 지내냐는 MSN까지 날라와서리...살아있다는 글이기도 하군요..ㅎㅎ..바빠서 별 수 없어요 ㅠㅠ
2005/03/03 14:59 2005/03/03 14:59

[펌] 부자, 결혼 그리고 본능

[출처] http://www.moneytoday.co.kr/view/2005/02/02/2005020210032365567.html?gulid=20040225094438&zReset
여고 동창생모임이 있는 날에는 적지 않은 아내들이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분통을 터트리게 된다. 학교 다닐 때 자기보다 공부도 못하고 못생긴 동창이 남편 잘 만나 사모님소릴 듣고 손에 물 한 방울 안 뭍이고 잘 사는 꼴을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게 된다.

여자는 남편을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인생이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 팔자 두레박 팔자'란 속담도 있다.
요즘이 어느 시절인데 그런 고리짝 뜯어먹는 소리냐고?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남자 팔자도 두레박인 건 마찬가진 것 같다.

얼마 전 결혼한 한 회사원은 “임신 3개월인 아내가 이제야 혼수를 모두 카드로 마련했고, 다른 빚까지 많다고 고백하는 데 경악했다”며 “워낙 씀씀이가 헤픈 여성들이 많은 요즘은 결혼할 때도 건강진단서가 아니라 ‘신용진단서’가 필요한 시대”라고 허탈해 했다고 한다.

또 얼마 전에는 한 패션회사 회장 아들이 평소 명품으로 치장한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10억대의 카드·사채 빚더미에 허덕이는 여자로 밝혀졌다고 한다.

이런 '밑 빠진 독'같은 여자를 만난다면 부자 되긴 커녕 쪽박 차기 딱 알맞다.

결혼의 실패는 엄청난 손해를 가져온다. 남성은 만약에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위자료 때문에 엄청 타격을 입는다. 외국의 경우는 재산의 반이 날라 간다. 미국에선 이혼 2번만 하면 완전히 알거지 된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아내에게 매일 아침 사랑한고 고백하는 것도 사실은 이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도 모른다. 빌게이츠 부인의 결혼 전 선물이 뭐냐 하면 이혼 시 재산 분할 권을 포기한다는 서약서였다고 한다. 이혼은 재산의 반이 날라 가는 대형사고(?)이다.

미국의 백만장자를 조사하니 평균 나이가 54세인데 한 여자랑 28년간을 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조강지처랑 오래 사는 게 부자 될 확률을 높인다. (혹시 아내가 맘에 안 들더라도 부자 되기 위해선 참고 버텨야 한다.28년만 참으면 된다. 그 이후엔 힘(?) 다 빠질 테니 그냥 계속 사는 게 유리하다. 버티자!! )

결혼의 조건으로 요즘 젊은이들은 상대방의 경제력을 가장 중시한다. 여성은 연애는 잘생긴 장동건이랑 하지만 결혼은 추남이어도 돈 많은 사람이랑 한다고 한다. 이에 맞서 남성들의 속물근성도 만만치 않다.

‘여자가 못생긴 건 용서해도 장모님이 돈 없는 건 용서 못 한다’는 무시무시한(?)
경고가 요즘 남자들의 속물세태를 말해준다. (내가 아는 딸아이 둔 아줌마는 이 말 듣고 충격(?)받아서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딸아이 둔 아줌마들 돈 모아야할 이유가 하나더 늘었다.)

요즈음 세상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혼을 통하여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문화 인류학자와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결혼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건 주로 여성에게 해당되는 일이라고 한다.( '백만장자와 결혼 하는 법'이란 영화도 나오고 책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여성에게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불쌍한(?) 남자들은 자력갱생해야 된다는 말이다.ㅠㅠ)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여자가 부자를 좋아하는 건 자연스런 본능이라고 한다.

여자는 자신과 자식을 보호해줄 남성을 찾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항의가 들리는것 같다. 그래서 증거를 대보자.

1980년에 데이비드버스 라는 심리학자가 전 세계에 걸쳐서 여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자들은 뭐니 뭐니 해도 돈 많은 남자를 최고로 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실험에서 작업복을 입은 남자와 신사복을 입은 남자 중 선호하는 남자를 고르게 했는데, 모두 신사복 입은 남자를 선호했다. 사실 두 남자는 옷만 달랐지 한 남자였음에도..

또 진화심리학자에 설명에 따르면 여성의 질투도 돈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여성은 배우자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주었느냐를 중요시하는데 이것은 배우자가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남자의 질투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였느냐에 초점을 둔다. 왜냐하면 자신 몰래 남의 아이를 가져서 키우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부자 남자들은 가난한 여성도 기꺼이 배우자로 삼으려 한다는데 이것은 남자들은 세상 모든 여자를 독차지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지구끝까지 퍼트리고자 하는 어마어마한(?) 본능적 사명을 타고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자는 열여자 마다 않는다'는 속담도 생겼는지 모르겠다. )

결국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여성이 부자 남성과 결혼하고자 하는 것도 자손을 많이 퍼트리기 위해서 인간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유전적 성향이라는 것이다.

여자 아이가 신데렐라 꿈을 꾸는 것은 자연스런 유전적 본능이라는 것이다. ( 사실 심청전도 그렇고 춘향전도 그렇고...모두 하층의 여자가 부자 남자 만나서 인생역전(?)시킨 이야기이다.)

문화 인류학자들이 조사한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회에서 여자들의 상류층부자와 결혼은 권장되는 반면에 부자여자와 가난한 하층계급의 남자와의 결혼은 금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를 인도 펀잡 지방의 최고성직자들에서 찾아볼수있다.

최고 성직자 계층은 아들을 낳으면 키워서 하층계급의 여성과 결혼시켰지만 딸아이를 낳으면 대부분 살해했다고 한다. 딸아이 살해이유는 상류층인 자신의 딸이 가난한 하층계급의 남자와 결혼하게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딸의 결혼으로 재산이 분산되는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고대 중국의 상류층에서도 딸아이를 죽였다고 한다. (우리속담에도 딸 시집보내면 기둥뿌리 하나씩 빠진다는 말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딸이 남의 집안으로 재산을 빼돌리기에 차별하고 구박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돈에 대한 욕심이 관습과 문화로 포장되었을것이다. 돈이 '웬수'다. )

유태인사회에서도 여성에게 유리한 결혼을 권장했다. 탈무드에서 아내를 고를 때는 자기보다 못한 여성과 결혼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옛날 양반들의 관습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며느리를 볼 때는 자기보다 낮은 집안의 여자를 보나, 딸을 시집보낼 땐 신분이 높은 집안으로 보내는 것을 이상적인 결혼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여튼 진화심리학과 문화인류학에 따르면 여성이 부자와 결혼하는 것은 인간 본성과 일치하는 자연스런 일인 것이다. ( X의 행운일까?^^)

예전에 필자는 못생겼지만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 미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리 돈이 좋아도 저런 추남하고 결혼할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여자들은 상대 남이 부자이면 그 남자가 정말로 멋있게 보인다고 한다. 난 멍청하게도 여태 그걸 몰랐다. 난 그녀들을 돈에 환장한 속물이라고 경멸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여성으로 하여금 부자에게 최면이 걸리도록 프로그램 해 두었다는데 할말이 없다. (결혼구혼 광고를 조사해보면 남자들은 여자의 미모를 조건으로 내세우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의 직업과 재산을 조건으로 내세운다고 한다.)

진화심리학자와 문화 인류학자들의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요즘 장가가기 힘들어하는 농촌총각들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을 속물이라고 탓하기 전에 이기적인 유전자를 탓해야 한다. 세상 모든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도록 타고난다면 특별히 어떤 여자를 속물이라고 탓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만약에 사랑만 먹고사는 여자가 있다면 오히려 그 여자가 별종인 것이다. (난 별종이 좋다. 우리 집 아줌마도 자기 자신이 별종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결혼 전에 필자가 완전히 개털(?)이었던 게 그 증거라나.. 자기를 만나는 덕분에 내가 구원을 얻었다고 세뇌시키고 있다. 하도 세뇌를 당하다보니 이제는 나도 그런 것 같다. )

어떤 현인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에는 두 가지 목적밖에는 없다. 사랑 아니면 돈이다. 사랑을 위해 결혼하는 자는 극히 짧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다음부터 오랜 세월 안절부절못하는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돈을 노려서 결혼하는 자는 행복한 나날은 바랄 수 없지만 한편 불행한 나날도 없을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평생 독신으로 지낸 철학자 칸트도 제자들에게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는게 현명하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인간은 아마도 본능에 따라서 돈을 선택하기 쉬울것이다. 여성이라면 더욱더 렛?대한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것처럼..)

그러나 인간은 본능을 따르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능을 초월할수있는 특이한 존재이다. 결혼은 재테크가 아니다. 결혼에서 만큼은 계산과 본능을 뛰어넘는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이었으면 좋겠다.
< 저작권자 ⓒ머니투데이(경제신문) >

ps) 꽤나 현실적인 글이네요. 이 칼럼을 연재하는 브라운스톤씨의 글을 꽤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이라는게 슬픈 현실이군요...역시 열심히 벌어야 하는가 봅니다...지르는걸 자제해야..ㅎㅎ
2005/02/03 09:51 2005/02/03 09:51

* 언젠가 글이 맘에 들어서 개인 게시판(회사 인트라넷안에^^)에 퍼두었던 글입니다. 출처 모름...흐...어디서 들고 온거지--; 어쨌거나 이글을 보면서 올해 정리겸 새해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1. 뚜렷한 Objective(목표)를 설정하라.

-당신을 일직선으로 나가게 만들어 준다.
-당신이 사용할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가 않음을 명심 하라.
-닥치는 일들을 잘 처리하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은 문제를 직면하게 될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 ” 간절히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효과이다.
-뚜렷한 목표는 목표달성을 이루게 하고 나아가 단축시키는 효과가있다.
-뚜렷한 목표는 간절히 원하는 일들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2번째 문장이 딱 박히는군요. 정말이지 해야할 일을 정확히 정하고 효율적으로 정확히 해나가는게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왠지 올해는 그런 면에서 연초에 계획했던 것중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좀 후회가 되네요.
2. 최소한 12가지 이상의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라.

목표는 3가지 큰 기준으로 목표를 세워라.
1) 사회봉사를 염두에 두어라.
2) 가정의 목표를 뚜렷하게 설정하라.
3) 자아실력 향상을 정해라.
적어도 한 달에 하나씩은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략을 가져라.
2005년에서는 3번을 위해 노력하는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일어 능력도 좀 키우고 영어도 다시 좀 하고~ 이래저래 해보고 싶은게 또 많아질 새해가 되겠군요.
3. 가정에 성공을 이루어라.

-모든 힘은 가정에서 나온다.
-절대 가정을 소홀히 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인생은 단기전이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기전이다.
-힘의 근원은 가정에서 나옴을 명심하라.
-돈을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자식농사를 망치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돈은 나중에 벌어도 가능하지만 자식교육은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우선순위는 가정이 우선임을 잊지 말라.
-사업에 실패하는 사람은 다시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가정에 실패하는 사람은 절대 회생하지 못한다.
아직은 솔로인지라..쿨럭..내년도 별로 솔로로 살 생각입니다만 앞날은 모를 일이고...어쨌거나 식구들에게도 좀 더 신경 잘 쓰고 뭔가 너무 혼자 겜만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드는군요(그래도 부모님과 겜 같이 잘 하는 편입니다만...민골4도 사다두었는데, 요즘은 잘 안하시더군요.^^) 정말 주변을 봐도 집안이 어지러우면 밖에서 성공해봐야 말짱 꽝이더군요. 100% 맡는 말 같아 보입니다.
4. 절약을 생활화하라.

-진정한 부자는 만원을 벌기 보다는 천원을 절약하는 데에서 나온다.
-절약하지 않고서는 부자 될 생각은 하지 말라.
-골프는 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10년 후에도 골프를 칠 자신이 있다면 하라.
그렇지 않다면 돈 안드는 취미생활을 하라.
으...반성~ 이라지만, 지름신이 한번 강림하면 정말 와르르 연타 지르기 모드가 되는지라...그래도 올해는 자취해서 살다가 집에 들어와서인지 모르지만, 드뎌 재정이 흑자로 돌아섰다는..(그럼 그동안 적자였던거냐--;) 나름대로 통장에 그냥 돈을 모셔두기는 아깝고, 작은 돈이라도 이제 효율적으로 굴려봐야 겠습니다.(일본에서 물건 사다 장사나 할까~.~) 정말 10년후에도 겜할 자신이 있으므로 겜은 계속 할 듯하군요...애니는? 아마 same~....(과연 절약이 되려나...)
5. 자기개발에 시간과 자금을 투자해서 실력을 쌓아라.

-직장인이 자영업이나 사업가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대략 2년에서 길게는 5년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 그때 가서 변하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신 자신을 위한 R&D(연구개발비)비율은 10%로 하라.
-2천만원이면 2백만원은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라.
술먹는 것 오락비, 유흥비만 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아파트 관리비, 자동차 보험료도 년간 백만원이 넘는다.
아파트 관리비. 자동차보험료 보다 당신은 수천만 배 더 귀중함을 잊지 말라.
-엉뚱한 곳에 돈 쓰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투자를 하라.
-성공관련 워크숍참여, 책 구입, 운동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라.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임을 명심하라. 투자하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
-교육투자는 비용 회수률이 대략 480%가 넘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2005년의 계획 첫번째가 뭔가 나 자신에 발전에 많이 투자하겠다는 류인데, 확실히 이런데는 좀 투자를 해두어야 겠습니다. 아직 팔팔할때(^^) 이래저래 해두어야지 나중에는 정말 시간과 체력과 환경이 될지 의문인지라...배우고 싶은거 배워두고 키워야 할 건 더 키우는 해가 되도록 화이팅 해봐야 겠습니다.
6. 생활패턴을 조기조침으로 만들어라.

-일찍 일어나지 않고서는 절대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경향을 가진다.
-최근 CEO의 평균 수면 시간은 4시간 정도이다.
-새벽은 당신에게 황금과 건강 그리고 성공을 가져다 준다.
-집안에 한 명만 이라도 새벽패턴을 하면 집안 전체가 건강해 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나이가 조금 들었다면 빨리 새벽형 생활로 바꿔라.
-30대를 지나면서도 새벽생활을 하지 못하면 평생 가난과 싸우게 됨을 명심하라.
-새벽패턴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찍 자는 것이다.
-나는 10시이전에 잔다. 9시 뉴스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신문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새벽패턴은 반드시 부를 가져다준다.
-10시 이전에 잠을 자기에 술을 먹지도 않고 오락과 유흥은 절대 할 수 없는 생활을 만든다.
지금 생각하면 새벽생활은 엄청난 돈을 절약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나아가 생활이 규칙적으로 되기 때문에 과거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다.
나아가 성인병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새벽은 또 많은 시간을 가져다준다.
새벽의 한 시간은 평상시의 3시간과 필적한다. 그 만큼 새벽시간은 집중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새벽의 위대함을 얼마나 빠른 나이에 경험하는가 ? 그 여부에 따라 성공하는 인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훈련소 퇴소후 맨날 6시만 되면 정신이 말짱해지다가 요즘은 다시 점점 평상시 패턴으로 (7:20분 기상입니다.--;) 돌아오고 있는데....다시 훈련소 모드로 돌려봐야겠습니다. 그러려면 10시에 '깔아~'야 하는데....흠냐...10시는 좀 무리 같고...11시~6시 정도면 딱 좋을 것 같군요. 일단 노력해봐야 겠습니다. 확실히 일찍 일어난 날은 왠지 하루가 길어서 이득 본 그런 느낌이기도 하고 하니깐요.(홈페이지 코딩이나 해야겠군요 당분간은^^)
7. 시간관리에 성공하라.

-시간관리는 목표와 계획에 의해서 관리된다.
-반드시 종이에다 잘 정리해서 적어두고 매일 꾸준하게 점검해야만 그것이 목표이고 계획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목표와 계획이라도 자주 점검하고 체크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목표는 먼저 평생목표를 정해야 한다. 적어도 죽기까지 100가지이상은 목표로 정해야 한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10년 목표, 1년목표, 6개월목표, 한 달 목표, 주간계획, 일간 계획순으로 일관되게 일일계획과 평생목표가 연관이 되어야 한다. 이것에 의해서 실행하고 평가하고 분석하고 다시 실행하는 반복이 바로 시간관리의 핵심이다.
-시간관리는 목표와 계획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일주일을 계획에 의거 행동하라.
그러면 시간이 흐르면 당신도 모를 정도로 많은 것을 이룬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최근에는 거의 무계획주의로 살아왔는데, 내년에는 한번 계획 잡고 살아봐야겠습니다. 뭔 차이가 있는지는 내년 연말에 정리해보죠^^; 과연 그때까지 여기는 잘 살아 있을 수 있을까나요^^; (왠지 그게 젤 궁금~)
8. 급변하는 경제흐름을 주시하라.

-지금은 경제적 지식이 큰 이익을 당신에게 가져다 준다.
-돈을 벌고 싶다면 경제면을 주시하라.
-정치, 스포츠, 오락, 연예에 관심을 두고 생활한 사람치고 큰 부자를 만나지 못했다.
-무식하게 증권만 한다고 돈을 벌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전체의 경제흐름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제 기본상식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면 죽을 때 까지 불안하게 살아가게 된다.

-재테크 제1조는 “모르면 가만있어라.”
괜히 모르면서 약간 배웠다고 투자하다 있는 재산 다 날리는 경우가 우리주위에는 너무 많다.
-20년 넘게 9시 뉴스를 한번도 빠짐없이 본 사람이 아직도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반면 경제에 관심을 둔 사람은 10년 안에 큰 부자가 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경제적 기초를 돈을 주고서라도 배워라.
-경제흐름을 잘 분석하고 파악하라.그러면 엄청난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최근에 모네타와 같은 사이트를 가끔 보면서 나름대로 경제 기초를 알아보려고 노력중입니다. 뭐 저야 뼈속까지 공돌이라고 생각하는바..사실 이런 분야와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취미 생활을 계속 유지하려면 나름대로의 재테크(^^) 전략은 있어야 할 것 같더군요. 구지 돈을 벌자라기 보다는 기왕 할때 제대로 알면 좀 나이 들어 도움은 되지 않을까 쪽이군요...모르는것 보다야 좋겠죠^^;
9. 성공훈련을 하라.

-성공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경험에 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해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박사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고 그 실천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이 성공한다.
-성공하는 인생을 원한다면 성공훈련을 하라.
-성공훈련을 하루에 한 시간 이상 하라.
훈련까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히 경험이 다양하고 정말 어렵게 경험한 그런 사람들은 다르더군요. 저 역시 이런저런 여러가지를 경험해보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역시 많이 알면서 많이 시도해보고 경험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 새해에도 이런저런 황당한 시도(^^)는 이어지겠죠...이번에는 또 뭘 해보려나~
10. 7가지 성공훈련 체크 리스트 (7 Success Training)

1) Condition Training.

- 술, 담배는 끊어라. ..............................30초 원칙. (-.-)
- 건강하고 균형 잡힌 육체를 만들어라. .............미루지 말라.
- 꾸준하게 운동하라. 평생운동. ....................청결한 의복,
- 조기조침을 생활화 하라. .........................부지런함
- 항상 주위 환경을 청결하게 하라.

2) Practice Training.

- 행동위주의 삶,
- 이론보다는 실전에 강해야만 한다.
- 실전은 경험이다.
- 현장에 나가서 착수하라,
- 위험을 감수하라, 위험을 통해 배워라.

3) Human Training.

- 좋은 만남이 좋은 운명을 결정한다.
- 좋은 사람을 보는 훈련,
- 주변 사람 정리하는 훈련,
- 좋은 사람관계 지속을 위한 훈련.
- 원하면 먼저 주라.
- 성공한 사람을 만나라.

4) Talking Training.

- 할 수 있다면 좋은 말만 하라.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해합니다.)
- 부정적인 말은 아예 하지 말라.
- 그리고 가급적 침묵하라. 침묵은 평온함을 가져온다.

5) Thinking Training.

-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려라.
- 인간의 능력은 무한함을 인정하라.
- 어떤 일이든 반드시 길은 있다. 어떤 일이든 절대 포기하지 말라.

6) Seeing Training.

- 눈은 마음의 창,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이 들어온다.
- 좋은 광경 72시간 잔상효과, 나쁜 광경 72시간 잔상효과.
- 머리는 항상 맑아야 한다. 머리가 늘 깨끗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 해뜨는 광경, 긍정적인 장면.
- 텔레비전은 가급적 삼가라. 텔레비전은 시간을 정해서 보라. 성인물은 절대 금물

7) Hearing Training.

-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들어라, 모차르트, 바하, 헨델
- 긍정적인 이야기, 힘을 얻는 이야기, 좋은 이야기.
- 감정을 자극하는 대중음악과 우울한 음악은 가급적 멀리하라.
- 험담, 질투, 원망하는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듣지 말라.

쉬운 Training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말도 아닌것 같으니 하나하나 해볼만 할듯합니다. 특히나 몇개는 정말 해보려고 했던 것들이군요. ^^;

정리해보면, 2004년은 뭔가 해보고 싶은 의욕은 많았는데, 초반에는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것이 많았고, 결국 4월에는 전직하게 되었고, 6월엔가 이사도 했고, 11월에는 훈련도 다녀오고...이래저래 다사다난(나라 안으로나 저에게나^^)했던 한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힘들고 머리 아픈 일이 많았던 때라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일을 또 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2005년은 이런 기분으로 맞이하고 싶네요. 얼마 안 남은 2004년의 마지막주를 다들 새로운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해보는 주간으로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ps) 뭐랄까 최근 이상하게 컴앞에 있을 시간이 적군요. 이 글도 24일부터 쭉 저장해두고 이제서야 포스팅한다는...역시 연말(^^)입니다.ㅎㅎ
2004/12/24 17:04 2004/12/24 17:04

[펌] 행복바이러스

가끔 웃음을 잃어버리고 계실때
이 사진중 하나를
책상이나 잘 보일수 있는 벽에 붙여 두셔서
언제든지 웃음을 다시 찾으시라고
프린터 하시기 좋게끔 따로따로 4장씩 만들었답니다..
항상 얼굴에 웃음을 간직하시고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은 전해주시는 밝은 원인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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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ww.lovetoon.net ]

ps)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자는 마음에서 옮겨봅니다. 출처 사이트에 좋은 그림들이 많으니 방문해보시길~
2004/09/02 10:47 2004/09/02 10:47

[펌] PlayStation 탄생전야

아래 글은 이런 저런 블로그를 떠돌아 다니던 중에 발견...
바로 옆에 계신 팀장님의 눈초리에도 꿋꿋이 감명 받으며 읽은 글입니다. 일본 기사들을 보면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풀 스토리가 나오니 뭐랄까...시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까요...참 멋집니다...
(약간의 글 정리를 다시 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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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ziozzang/140004414830

※ 이 이야기는 루리웹에서 보고 감동을 받아서 포스트로 옮겨 놓은 글입니다.원래 출처는 주간 패미통인듯 싶습니다.
총 6화로 되어 있고 저는 이 포스트 하나로 모두 옮겨 왔기 때문에 조금 길지만 게임쪽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할겁니다.

PlayStation 탄생전야 (1) "세계의 소니"의 이단아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고 화사한 게임기가 업계의 패권을 차지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세계의 게임 시장을 뒤엎은 "플레이스테이션"이 발매된지 금년으로 10년. 지금에야 말할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탄생까지의 이야기 그 첫번째.
매장에 진열된 백색의 네모난 상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12월의 차가운 하늘 아래, 드디어 발매된 새로운 보물을 안은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빛났고, 들뜬 마음은 귀로를 매우 서둘게 했다. 1994년 12월 3일. 난공불락의 거인으로 세계 게임 시장에 군림하고 있던 닌텐도 하드에 정면으로 승부를 건 머신이 울음을 터뜨린다. 불과 60명도 안되는, "세계의 소니"를 뛰쳐나온 게임업계의 풋내기들에 의한 혁명의 불길이 이때 분명 치솟은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이제는 세계의 어린이들의 공통된 보물이 된 이 머신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스타트때부터의 멤버 중 한명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코퍼릿 이그제큐티브 사에키 마사츠카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대를 뒤바꾼 이 머신의 탄생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준비실"
소니 본사 선전부에서 8밀리 비디오의 선전맨을 하고 있던 사에키 마사츠카의 눈앞에 그렇게 쓰인 종이가 팔랑 놓여졌다. 처음 듣는 명칭이었다.
「여기 가보지 않겠나. 지금 토쿠나카가 추진중이다」
사에키의 눈앞에 이데이 노부유키(현 소니 그룹 CEO)가 있었다. 당시 소니의 선전담당 임원을 맡고 있던 이데이는 사에키가 몸을 두고 있던 선전부의 톱. 그 이데이가 토쿠나카 테루히사(현 소니 그룹 CSO)가 추진하고 있던 새로운 사업을 돕지 않겠느냐고 사에키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나 처음 그 이름을 듣는 이 부서가 대체 뭘 하려고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안된다. 계속 고개를 갸웃하는 사에키를 향해 이데이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게임을 하는 거다」
사에키는 뛰어오를 정도로 깜짝 놀랐다.

플레이스테이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적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닌텐도와 소니가 90년대 초에 제휴를 맺고 추진했던 새로운 게임 사업이다. 92년 1월에 닌텐도는 당시 더없이 융성했던 수퍼 패미컴에 CD-ROM 어댑터를 접속, 이 시대의 게임기에서는 어려웠던 3차원 영상이나 동영상 재생에 의한 새로운 플레이를 제공할 계획을 발표한다. 이때 파트너로서 닌텐도와 함께 CD-ROM 어댑터를 개발하고 있던 것이 다름아닌 소니인 것이다.
90년에 맺어진 제휴에 의해 소니는 닌텐도와 손을 잡고 수퍼 패미컴용의 CD-ROM 어댑터와, 수퍼 패미컴과 호환성을 갖게한 CD-ROM 머신, "PS-X"(발매중인 PSX와는 별개)의 개발을 추진한다. 그러나 91년에 제휴가 발표되기까지는 소니 내부의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이데이가 말을 걸었을 때 사에키가 깜짝 놀란 것도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닌텐도와의 공동전선은 곧 좌절되게 된다. 그 이유로 닌텐도는 "당시의 소프트 개발 기술에는 과대 스펙이었다", "데이터의 로딩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불법 복제의 방지책이 만전이 아니다" 등을 들고, 소니는 "노리고 있는 타겟층등의 부분에서 양사에 온도차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유는 어떻든 닌텐도와 소니는 완전히 결별. 게임사업에서 철수할 것인가, 아니면 단독으로 하드를 개발할 것인가. 소니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때 소니의 게임기 사업을 이끌고 있던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인 쿠타라기 켄(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사장 겸 CEO, 소니 부사장)이었다. "게임사업으로부터의 철수도 어쩔 수 없다"는 상황 속에서, 쿠타라기는 당시의 소니 사장 오오가 노리오에게 가서 게임사업의 속행을 직접 담판지었다고 한다. 강한 어조로 말하는 쿠타라기를 향해 오오가 사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해봐라!」라고 외치고,「DO IT!」이라고 소리치면서 책상을 두드렸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사람은... 뭐랄까. 하드 회사 사람이 아니죠. 크리에이터. 그게 제일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84년에 소니의 아츠키 정보처리연구소에서 "시스템 G(주1)"라는 그래픽 엔진의 영상을 보았을때부터, 리얼타임으로 움직이는 3차원 영상을 사용한 게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었다는 느낌일까요 (웃음)」(사에키)

이렇게 해서 쿠타라기가 이끄는 소니의 테크노크라트 군단을 중심 멤버로, 게임사업을 추진하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SCE)"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기술자가 모여 획기적인 머신을 만들어도, 그것만으로 상품이 팔리는 건 아니다. 훗날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태어나기 위해 또 한가지 꼭 필요했던 것이, 마루야마 시게오(현 SCE 이사)가 이끄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군단이었던 것이다. 새로 CD-ROM을 미디어로 한 게임기를 만든다. 지금까지 주류였던 마스크 ROM의 비지니스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판매방법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드웨어 중심의 비지니스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의 비지니스로.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 CD의 판매에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확립한 마루야마 등의 힘이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당시 SME의 한 조직이었던 EPIC 소니 레코드가 수퍼 패미컴용 소프트를 만들고 있었다. 쿠타라기는 수퍼 패미컴 소프트를 만들고 있었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이념, 목표로 해야 할 것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곧 기술자들은 쿠타라기의 이야기에 끌려들고, 그 소용돌이에 마루야마도 빨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SCE의 초대 사장인 오자와 토시오를 톱으로, 쿠타라기가 이끄는 테크노크 라트들과 마루야마가 이끄는 SME 군단이 하나가 된다. 그래도 모인 인원은 60명이 안 된다. "세계의 소니"에 있어서 당시 게임사업은 역시 특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60명의 "이단아"들이 게임업계를 뒤엎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93년 10월. 시나가와에 있는 소니 본사에 일본의 게임산업을 떠받쳐 온 약 300명의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공개된 것이 유명한 공룡 머리 데모이다. 폴리곤으로 그려지고 아름다운 텍스쳐가 붙여진 티라노사우르스의 머리가 자유자재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모습에, 모인 사람들은 경탄하는 것도 잊고 잠시 말문이 막히게 된다. 그러나 행사장에 모인 다수의 소프트메이커 중에서 유일하게 놀란 표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남코 관계자들이었다. (2편에 계속)

주1. 시스템 G : 80년대 중반에 소니가 개발한 그래픽 엔진. 3D 화상에 순식간에 텍스쳐 매핑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전파소년」에서 출연자의 얼굴을 확대, 축소시켰던 것은 이 시스템 G이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2) 환상의 하드
하드의 발매에 [릿지 레이서]를 맞추고, 그 후에도 [철권], [에이스 컴뱃] 등 4번 타자급 소프트를 잇따라 투입(주1)했던 남코의 존재없이 오늘날의 플레이스테이션의 융성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면 남코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라이벌 머신에 대한 강렬한 어드밴티지였던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 비지니스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인가. 사실 소니가 신하드를 개발하고 있던 무렵, 남코는 그와 시기를 같이 해서 전혀 다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코 독자의 차세대 하드 개발"이었다.
남코의 가정용 게임기 개발은 사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개발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남코의 연구개발부대를 이끌고 있었던 이시무라 시게카즈(현 남코 WMC 컴퍼니 프레지던트). 기술 부분에서 남코의 뼈대를 떠받쳐 온 인물이다.
아케이드에서는 최첨단 3D 기술분야에서 세가와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던 남코. 그러나 가정용 비지니스에 있어서는 패미컴이나 수퍼 패미컴 참가 당시의 절대적인 우위성을 잃고 있었다. 그런 당시의 남코에게 있어서 독자적인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 발매해 아케이드의 히트작을 그대로 가정에 가져오는 것은 "비원"이었던 것이다.

남코도 신하드의 미디어로는 CD-ROM을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CD-ROM 드라이브의 톱 브랜드였던 소니에게 당시의 남코 연구개발진이 접촉을 시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91년 초, 이시무라는 쿠타라기에게 개발중인 신하드의 데모를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쿠타라기는 놀라기는 커녕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않다. 또 이 시점에서는 쿠타라기는 소니의 가정용 하드 구상에 대해서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경계하고 있었던 거겠죠」
라고 이시무라는 당시를 돌아본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남코로부터 가정용 게임기가 발매되는 일은 없었다. 가장 큰 요인은 자금 문제였는데, 실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존재 또한 남코의 가정용 게임기를 "환상 의 하드"로 만든 요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93년의 발표회에 앞서 남코의 간부 몇명이 소니 본사에 초대된다. 거기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소니가 개발하고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의 원형이었다.
"현재의 기술로 이런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 수 있는건가!"
거기서 본 것은 남코의 기술자들이 놀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회합이 끝난 뒤에 하라구치 요이치(현 남코 CT 컴퍼니 프레지던트)는 함께 출석했던 이시무라에게 「물론 우리 머신 쪽이 우수하지」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시무라는 딱 잘라 「아니, 저쪽이 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플레이스테이션이 제시한 머신 스펙은 획기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남코는 가정용 게임기의 개발을 중지했다. 그리고 소니가 개발하는 이 혁신적인 머신에 전면적으로 협력할 의향이 굳어지기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93년 가을의 어뮤즈먼트 머신 쇼에서 선열한 데뷔를 장식한 업무용 [릿지 레이서]. 이 행사장에서 이시무라는 하라구치에게 「내년에는 이게 가정용이 되는군요」라고 속삭였다. 수퍼 패미컴 전성기인 이 무렵, 남코와 소니는 "차세대"의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94년 봄, 폴리곤으로 그려진 빨간 자동차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시제품상에서 달리는 영상을 보았을 때, 하라구치는 "팔린다!"고 확신했다.

「몇십년이나 이 업계에서 장사를 해왔습니다만, 영상만으로 오싹할 정도의 쇼크를 받았던 것은 패미컴과 플레이스테이션때 뿐입니다. 그만큼 이때의 [릿지 레이서]의 퀄리티는 대단했죠」(하라구치)

나아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엔진이 범용성이 높은 것이었던 것도 남코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딱 합치한다.
「이 당시의 남코는 소형 아케이드용 광체에 탑재할 수 있는 저가의 우수한 3D 엔진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보게 된 것이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본체가 발매된 2주 뒤에 3차원 엔진을 공통으로 하는 "system 11"(주2) 기판으로 업무용 [철권]이 발매된 것은 그런 사정에서였던 겁니다」(이시무라)

이렇게 해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은 강력한 파트너를 얻게된 것이다. (3편에 계속)

주1. 잇따라 투입 :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로부터 [릿지 레이서](94년 12월 3일), [사이버 스레드](95년 1 월 27일), [스타 블레이드 α](95년 3월 31일), [철권](95년 3월 31일), [에이스 컴 뱃](95년 6월 30일)을 발매.
주2. system 11 기판 : 플레이스테이션의 아키텍쳐(그 기기의 근간을 이루는 부품이나 기능의 집합)을 응용 한 남코의 업무용 기판. 후에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 2의 아키텍쳐를 응용한 "system 246"도 개발했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3) 문전박대와 유통혁명
93년 10월의 데몬스트레이션은 충격이 되어 세계의 게임업계를 돌았다. 그때까지 "폴리곤 따위", "3D 따위"라고 말하던 사람들일수록 그 압도적인 묘화능력에 깜짝 놀란다.
"게임이 변한다".
분명 이때 세계의 게임 크리에이터들에게 그런 마음이 싹튼 것이다.

최초의 데모를 마치고 한달 뒤인 11월 16일, "주식회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가 정식으로 설립. 전술한대로 약 60명의 멤버로 전혀 노하우가 없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회사 설립 파티 자리에서 동사의 초대 사장인 오자와 토시오는 모인 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들에게는 소니와 SME의 피가 반반씩 들어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것. 소니도 SME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자. 문화로서의 제3의 회사를 만들자"

이때의 말은 정말 마음에 사무쳤다고 사에키는 술회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을 기치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60명의 이단아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획기적인 하드가 있어도 거기서 돌아가는 소프트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업종이라는 점에서 SCE에게 유리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에서부터의 스타트였던 것이다.

「당시의 구호는 "소프트가 없으면 단순한 상자". 세가가 새로운 하드를 발표한 점도 있어, 일단 분담해서 소프트 메이커를 돌기로 했습니다」(사에키)

소프트 메이커 쪽에는 토쿠나카, 쿠타라기, 마루야마는 물론, 라이센시 창구의 책임자인 타카하시 유지, 사토 아키라(현 SCE 부사장 겸 COO), 요시다 슈헤이(현 SCEA 제작 책임자), 사에키와 그 부하들까지 동원되었다. 라이벌 진영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도 일단 참가만이라도 표명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부탁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메이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남코처럼 금방 구체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는 메이커도 있는가 하면, 「○백만대 팔리고 나서 와줘」라고, 쌀쌀맞게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소프트 메이커를 설득하는 것과 동등한 레벨의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추가주문이 있으면 바로 출하할 수 있는 CD-ROM의 이점(주1)을 살린 유통 시스템의 정비이다.
그때까지의 마스크 ROM(주2)과 비교했을 때의 CD-ROM의 이점은 여러가지 있지만, 최대의 어필 포인트는 "리피트 (추가) 생산이 용이한 것"일 것이다. 생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리피트 생산을 할 수 없었던 마스크 ROM의 경우는, 품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래도 조금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메이커, 판매점 모두 불량재고의 공포에 떨게 되어 있었는데, SCE가 제시한 비지니스 모델에서는 설령 매진되어도 3일만에 리피트 생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걸 도매상이나 판매점에 이해시키는 영업담당의 노력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CD-ROM으로 함으로써 뭐가 달라지는가. 그 이점을 회사의 톱과 마케팅 부대 전원이 철저하게 말했습니다. 당시는 모두가 완전히 똑같은 설명을 할 수 있었죠」(사에키)

정말로 잘 뭉쳤다고 본다며 사에키는 웃는다. 그러나 사내의 분위기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소니의 중핵사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0년 뒤에 소니 그룹에 있어서 이만큼 임팩트가 있는 사업이 될 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소니와는 많이 거리를 두어 온 셈입니다. 문화면에서 말이죠. 소니를 싫어하게 되었었다고 할 정도로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두가 뭉쳐 있었던 요인 중 하나겠죠' (사에키)

94년 4월, SCE는 주요 소프트메이커의 경영진, 영업, 개발 담당자를 시즈오카에 초청 했다. 이곳에 있는 CD-ROM 공장을 견학시켜, CD-ROM이 얼마나 스피디하며, SCE가 말하고 있는 것이 탁상공론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대강 공장을 보여준 뒤, 회의실로 안내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숨을 삼켰다. 사에키가 준비한 21대의 멀티슬라이드로, SCE가 생각하는 새로운 유통형태가 더듬더듬 설명되어 간 것이다.

"구체제가 뿌리 깊은 일본 게임업계의 유통을 바꾸기 위해 모든 것 을 일단 우리들에게 맡겨주길 바란다".

그것이 약 20분에 걸친 프레젠테이션의 주지였다. 그리고 그 생각에 응하듯, 참가자 전원이 맹렬히 메모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참가해준 모든 메이커가 우리들의 유통에 모든 것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 덕분 에 지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는 겁니다」(사에키)
그들을 축복하듯 공장 주위의 벚꽃은 만개해 있었다. (4편에 계속)

주1. CD-ROM의 이점 : 그때까지 주류였던 마스크 ROM(주2 참고)에 비해 제조원가가 대폭 싸고, 용량이 훨씬 크며, 제조 스피드가 빠른등, 수많은 이점이 있다. 반대로 데이터의 로딩 시간이 긴 등의 디메리트도.
주2. 마스크 ROM : CD-ROM이 광디스크 미디어인데 반해, 마스크 ROM은 반도체를 사용한 기억장치. 데이터의 로딩은 빠르지만 CD-ROM에 비해 제조원가가 비싸고, 생산에도 시간이 걸린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4)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
시즈오카에서 공장견학이 행해진 것과 때를 같이 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본체 디자인이 거의 완성되었다. 본체의 디자인 기간은 약 1년. 수많은 폐기된 디자인 속에서 그 단색의 심플한 디자인이 완성된 것이다. 그때까지의 게임기와는 선을 긋는, 싫증이 나지 않는 참신한 디자인 (주1). 아이들이 난폭하게 다뤄도 부서지지 않는 소재를 선정 하고, 누가 봐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색을 엄선했다. 정말 세부까지 신경써 선정된 그래픽인 것이다. 불과 반년 전까지는 열몇배 크기의 투박한 상자에 주렁주렁 코드가 연결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걸 개발진은 확실하게 완성시켜 온 것이다.

하드의 목표는 섰다. 남은 것은 이 머신을 확실히 팔기 위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는 것이다. 당시의 SCE 사내용 자료를 보니 "PJ100K"라는 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의미인지 묻자, 사에키는 웃으면서「발매 첫날의 출하대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K"라는 건 1000이란 의미. 소니의 제조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죠. "PJ"는 프로젝트. 만드는 쪽은 발매 첫날까지 반드시 10만대를 만든다. 그리고 판매하는 쪽은 그 10만대를 반드시 판다. 제조와 판매 공통의 구호인 것이죠」(사에키)

훗날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 첫날에 100만대 가까이 팔린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지만, 과연 정말로 10만대 출하할 수 있을 것일가, 그리고 그게 팔릴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되면 SCE 사내는 벌집을 쑤신듯 시끄러워졌다. 게임 비지니스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 뿐이었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이번에 이 기사를 쓰면서 전국 의 게임 판매점에 "플레이스테이션이 패권을 차지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YES"란 답은 소수. 그 이유로 대부분의 판매점이 "닌텐도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단 한사람, "절대 팔릴 거다"라고 확신하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그것이 당시 SCE의 개발부 부장을 맡고 있던 쿠타라기 켄이었던 것이다. 쿠타라기는 과거의 게임기의 판매실적이나 첫날의 출하대수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게임 유저들의 강한 호기심, 강한 흡인력은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사에키를 비롯한 사원들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걱정스런 얼굴의 그들을 볼 때마다 쿠타라기는「문제없어」라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 해 5월에 영업담당자가 게임 판매점의 이름 을 쭉 늘어쓴 모조지를 사내에 붙이고, 특약점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곳에 장미꽃을 붙여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하드의 발매가 가까워져도 모조지는 빈곳 투성이. 결국 발매 직전이 되어서도 모조지가 장미로 완전히 메꿔지는 일은 없었다.

이런 사내의 불안과는 반대로, 조금씩 그리고 확실한 순풍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불어오고 있었다. 참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발표된 것도 딱 이 무렵. 94년 5월이다. 이름을 붙인 사람은 쿠타라기 켄 본인이지만, 실은 닌텐도와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부터 이 명칭으로 불렸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니의 창업자 이자 당시 회장이던 모리타 아키오는 이 이름을 듣고「줄이면 "프레스테"인가. "스테 (일본어로 "버린다"는 의미)"가 붙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군」이라고 중얼. 이거 큰일 났다고, 사내에서는 그때부터 한달 동안 새로운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지(주2)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한다. 결국 "놀이의 컴퓨터"라는, 쿠타라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멋지게 나타낸 이 명칭으로 낙착되었지만, 자칫하면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실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이 명칭 발표에 맞추듯 참가 메이커도 날로 늘어, 다수의 소프트를 발매 시기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유명한 캐치 카피,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이다. 말꼬리만 보면 업계의 모든 타이틀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모여든다고 볼 수도 있고, 모든 장르의 게임이 모여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SCE가 부여하고 싶었던 의미는 전적으로 후자로, 아케이드나 PC의 게임도 간단히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지만, 많은 유저들은 "패권을 차지해 패자를 목표로 하는 멋진 카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보였든, 이 캐치 카피가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 었다」
며 사에키는 웃는데, 이 무렵부터 대담하고 화제성 풍부한 TV CF나 본 사람의 머리 위에 "!?"가 튀어나올 것 같은 캐치 카피(주3)가 주목받게 된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역사는 선전과 카피의 역사다"라고 자주 이야기되는데, 하드 발매 때부터 SCE의 선전 센스는 발군이었고, 또 이색적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를 비롯, 오랫동안 플레이스테이션의 캐치 카피를 만들어온 카피 라이터 코시모 카즈야 는,「"뭘 유저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가"를 최대의 테마로 카피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카피에서 제시한 약속을 지키고, 그걸 쌓아나감으로써 유저들과의 인연을 강화 해 나간다.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의 행보 자체가 아닐까.

발매가 다가옴에 따라, 하드 메이커, 소프트 메이커의 사내는 전쟁터처럼 혼잡해진다. SCE의 하드 개발실은 텅 비어 있었다. 전원이 하드 생산공장에 틀어박혀, 플레이 스테이션의 최종 체크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드 개발실이 텅 빈 상황을 본 타부서의 사원들은 안도감에 싸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하드 개발자가 사내에 남아 있으면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게 된다. 아무도 없는 것이 오히려 "발매할 수 있다"는 걸 약속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일찌감치 참가를 표명하고 동시발매 타이틀로 간판 소프트인 [릿지 레이서]를 준비한 남코는 어땠는가. 하라구치는 이 시기, 플레이스테이션과 [릿지 레이서]를 안고 전국의 유통업자들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지금까지의 머신과는 전혀 다릅니다」,「반드시 팔립니다!」... 정말 전국의 업자들을 하나 하나 돌았다. 그들의 좋은 반응과 [릿지 레이서]의 경이적인 퀄리티가 하라구치를 비롯한 남코 사원들을 맹렬히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SCE측과 모든 것이 서로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발매 첫날의 출하목표인 10만 대가 그 대표적인 것으로, 하라구치는 10만이라는 숫자를 듣고 반쯤 맥이 빠졌다고 한다.

「수퍼 패미컴용 소프트면 100만, 200만 팔리는 것도 드물지 않았죠. 그런 세계에서 10만대로 기뻐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안됩니다. 그럼 수퍼 패미컴에게는 이길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하라구치)

그래도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믿었다. 독자적인 하드를 개발한다는 꿈을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자신들의 눈을 믿었던 것이다. (5편에 계속)

주1. 참신한 디자인 : 본체의 디자인도 그렇지만, 컨트롤러도 눈길을 끄는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이 3D가 특기인 머신이라는 것도 있어, 컨트롤러의 디자인도 평면적인 것이 아니 라 "입체"를 의식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주2. 새로운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모리타 아키오 회장의 한마디에 의해 새로운 명칭이 모색된다. 한때는 사내에 "신형 게임기의 명칭 모집"이라는 취지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주3. 캐치 카피 : 플레이스테이션은 TV CF나 광고의 캐치 카피로도 종종 화제가 되었다.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94년 12월~95년 12월)외에도 "가자, 100만대"(95년 2월~4월) 등 참신한 카피가 게임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5) PJ100K는 이루어졌다!
그리고 발매일을 다음날로 앞둔 94년 12월 2일. 쿠타라기와 마루야마의 제안으로 SCE는 에비스의 가든 홀로 메이커 관계자나 크리에이터들을 초대해 조촐한 발매 전야제를 개최했다. 게임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을 함께 싸워온 전우들과 함께 카운트다운하고 싶다. 그들의 이런 마음이 가든 홀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하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맺어주고 있구나, 하는 걸 확신할 수 있었던 순간입니다」
라고 당시를 돌아보는 것은 현 SCEJ 선전부 부장인 호소야 메구미이다. 94년 6월에 SME에서 이적해온 그녀에게 있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발매는 정말 싸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미디어로부터 "게임 신참자"라고 야유당하면서도, 오히려 그걸 양식으로 삼아 출판사나 TV 방송국을 도는 나날들...
「별로 기대되고 있지 않았기에 망설임 없이 저희들다운 프로모션 전개를 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라고 호소야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판매점 앞에 적극적으로 시유 코너를 설치해 나간 것도 플레이스테이션이 처음. 이것은 주로 마케팅 부대를 구성하고 있었던 SME 출신자에 의한 시책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매장에서 상품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스템은 "부자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매장의 게임 체험 코너는 매우 일반적인 풍경 이 되었지만, 당시는 실로 획기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SME 출신자를 끌어모은 쿠타라기의 혜안은 이런데서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94년 12월 3일.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이 전국의 숍에 늘어서는 것이다. 발매 당시의 가격은 39800엔. 같은해 11월 22일에 발매된 세가의 "새턴"이 44800엔이었으므로, 그보다도 5000엔이나 싼 가격을 설정했다. 목표였던 10만대도 그럭저럭 갖춰졌다. 남은 것은 얼마나 팔려주느냐이다.

그 날 이른 아침, SCE의 모든 사원이 아키하바라나 신주쿠의 양판점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새 하드나 대작 소프트가 나오면 도내의 양판점에는 반드시 행렬이 생긴다. 패미컴 시절부터 있는 게임업계의 연례행사 같은 것인데, 그 상품의 인기를 아는데 있어서 가장 직접적인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사에키는 우선 신주쿠에 있는 요도바시 카메라로 향했다. 아키하바라에 필적하는 행렬 장소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게임 팬들이 추운 겨울 하늘 아래 늘어서 있을 것인가?
그러나 늘 게임을 팔고 있는 매장에는 전혀 손님의 모습이 없었다. 행렬의 규모는 작아도 누군가 서있을 걸로 믿고 있었던 사에키에게 있어서 이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문득 가게 옆 골목으로 눈길을 향하자, 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보통 그런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보니, 그곳이야말로 이 날을 위해서만 마련된 "플레이스테이션 특설매장"이었던 것이다.
행렬은 경이적인 길이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게임 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쯤 멍하니 행렬을 바라보던 중에 그렇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꼭 구입한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사에키는 신주쿠역의 지하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꾸러미를 든 아이들에게 옆에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았다.

「아이들 쪽에서 보면 모르는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거는 셈이니까 무서운 건 당연하죠. 하지만 꼭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명함을 건네고 이 게임기를 만든 회사의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웃음). 그래도 그들은 다들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슴에 꼭 안고서 절대로 놓지 않겠다, 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무엇보다도 기뻤죠」(사에키)

사에키는 그 길로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거기서 만면에 웃음을 띄운 쿠타라기를 만난다. 아키하바라에서 합류한 SCE의 임원 몇명은 함께 아키하바라에 있는 스테이크 가게에 들어가, 조촐한 축배를 들었다.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스테이크를 쿠타라기가 전원에게 대접했다. 정말 기쁜듯한 웃음이 쿠타라기의 얼굴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6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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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Station 탄생전야 (6) 시대가 변한다, 바람이 분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의 플레이스테이션 인기에 예상도 어긋나 버린다. 첫날에 출하한 10만대는 순식간에 매진. 소프트와 달리 하드는 그렇게 간단히 추가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완전한 물량 부족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팔릴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라고 SCEJ 프로덕트 마케팅부 과장인 하 야시 유키코는 당시를 돌아보는데, 그만큼 플레이스테이션의 매상은 대단했다. 결코 오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순식간에 전국의 매장에서 "소멸"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남코의 [릿지 레이서]의 판매량이다. 놀랍게도 하드의 출하가 10만대인데 반해 [릿지 레이서]는 15만장이나 팔린 것이었다. 즉 5만명의 유저가 하드의 재출하를 기다리지 못하고 소프트를 먼저 구입해 안달하고 있다는 것. SCE도 남코도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발매의 임팩트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우선은 어쨌든 100만대를 파는 것. 스타트는 거기서부터라고 사에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세워진 것이 95 년 2월~4월의 캐치 카피, "가자, 100만대"였다.

「100만대라는 숫자에 매우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패해 사라져간 무수한 하드들의 분수령이 이 숫자였던 겁니다. 100만대를 넘기는 하드는 살아남는 하드다. 그러니 발매일에 구입해준 코어 유저분들도 안심하길 바란다. 그런 메시지였던 겁니다」 (사에키)

95년 7월에는 이미 가격 인하를 감행. 이게 효과를 본 건지 발매한지 1년이 지난 95 년 12월에는 출하대수가 200만대를 돌파, 라이벌 진영에 차이를 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96년 1월 31일. 하드를 승리로 이끄는 힘을 지닌 킬러 소프트를 데리고 스퀘어 (당시. 현 스퀘어 에닉스)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투입되는 타이틀은 [파이널 판타지 VII]. 에닉스(당시. 현 스퀘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 필적하는 힘을 지닌 RPG의 양대 브랜드 중 하나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정식으로 도입 되게 된 것이다.

이 날을 경계로 플레이스테이션은 독주를 시작한다. 완전히 유저의 신뢰를 얻어낸 하드는 얼마나 강한가. 내세우는 캠페인은 전부 화제가 되고, 96년 8월에 발매된 스퀘어의 격투 게임 [TOBAL No.1]에는 [파이널 판타지 VII]의 체험판이 동봉. 플레이스테이션 유저들을 열광케 한다. 나아가 97년 1월에는 에닉스가 [드래곤 퀘스트 VII]을 플레 이스테이션에 투입하는 것을 정식으로 표명. 양대 브랜드를 손에 넣은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세는 이미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시대는 확실히 움직였다. 아무도 바꾸지 못했던 게임업계의 세력도는, 불과 60명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혁명에 의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이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의 탄생에서 승리까지의 거짓 없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플레이 스테이션이 패권을 쥐게 했는지, 너무 많은 요소가 있어 하나를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이 질문을 사에키에게 던져 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순풍이 휘잉 불어 온 거겠죠. 하드가, 그리고 시대가 변한다는 바람이. 이 바람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마루야마씨가 종종 말했었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운이 없으면 안된다고 (웃음). 이거 무거운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사에키)

시대의 격류는 멈출 줄을 모른다. SCE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UMD (유니버설 미디어 디 스크)"라는 미디어를 이용한 신형 하드 "PSP"가 2004년 연말에 등장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이 플레이스테이션2로 진화했을 때와는 또 다른, 미지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완결)

- 출처: 주간 패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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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비록 개인적으로는 UMD를 이용한 PSP를 그리 성공확율이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저들의 추진력과 나름대로 쌓아온 노하우가 어떻게 전개되서 제 예상을 확 깨줄지도 앞으로 지켜볼 일이겠죠. 이 시대에 살아가는걸 멋지게 생각중~
2004/09/01 10:59 2004/09/01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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