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이런 저런 블로그를 떠돌아 다니던 중에 발견...
바로 옆에 계신 팀장님의 눈초리에도 꿋꿋이 감명 받으며 읽은 글입니다. 일본 기사들을 보면서 대략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풀 스토리가 나오니 뭐랄까...시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까요...참 멋집니다...
(약간의 글 정리를 다시 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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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ziozzang/140004414830
※ 이 이야기는 루리웹에서 보고 감동을 받아서 포스트로 옮겨 놓은 글입니다.원래 출처는 주간 패미통인듯 싶습니다.
총 6화로 되어 있고 저는 이 포스트 하나로 모두 옮겨 왔기 때문에 조금 길지만 게임쪽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할겁니다.
PlayStation 탄생전야 (1) "세계의 소니"의 이단아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고 화사한 게임기가 업계의 패권을 차지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세계의 게임 시장을 뒤엎은 "플레이스테이션"이 발매된지 금년으로 10년. 지금에야 말할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탄생까지의 이야기 그 첫번째.
매장에 진열된 백색의 네모난 상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12월의 차가운 하늘 아래, 드디어 발매된 새로운 보물을 안은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빛났고, 들뜬 마음은 귀로를 매우 서둘게 했다. 1994년 12월 3일. 난공불락의 거인으로 세계 게임 시장에 군림하고 있던 닌텐도 하드에 정면으로 승부를 건 머신이 울음을 터뜨린다. 불과 60명도 안되는, "세계의 소니"를 뛰쳐나온 게임업계의 풋내기들에 의한 혁명의 불길이 이때 분명 치솟은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
이제는 세계의 어린이들의 공통된 보물이 된 이 머신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스타트때부터의 멤버 중 한명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코퍼릿 이그제큐티브 사에키 마사츠카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대를 뒤바꾼 이 머신의 탄생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사업준비실"
소니 본사 선전부에서 8밀리 비디오의 선전맨을 하고 있던 사에키 마사츠카의 눈앞에 그렇게 쓰인 종이가 팔랑 놓여졌다. 처음 듣는 명칭이었다.
「여기 가보지 않겠나. 지금 토쿠나카가 추진중이다」
사에키의 눈앞에 이데이 노부유키(현 소니 그룹 CEO)가 있었다. 당시 소니의 선전담당 임원을 맡고 있던 이데이는 사에키가 몸을 두고 있던 선전부의 톱. 그 이데이가 토쿠나카 테루히사(현 소니 그룹 CSO)가 추진하고 있던 새로운 사업을 돕지 않겠느냐고 사에키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러나 처음 그 이름을 듣는 이 부서가 대체 뭘 하려고 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이 안된다. 계속 고개를 갸웃하는 사에키를 향해 이데이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게임을 하는 거다」
사에키는 뛰어오를 정도로 깜짝 놀랐다.
플레이스테이션의 탄생을 말하기 전에 적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닌텐도와 소니가 90년대 초에 제휴를 맺고 추진했던 새로운 게임 사업이다. 92년 1월에 닌텐도는 당시 더없이 융성했던 수퍼 패미컴에 CD-ROM 어댑터를 접속, 이 시대의 게임기에서는 어려웠던 3차원 영상이나 동영상 재생에 의한 새로운 플레이를 제공할 계획을 발표한다. 이때 파트너로서 닌텐도와 함께 CD-ROM 어댑터를 개발하고 있던 것이 다름아닌 소니인 것이다.
90년에 맺어진 제휴에 의해 소니는 닌텐도와 손을 잡고 수퍼 패미컴용의 CD-ROM 어댑터와, 수퍼 패미컴과 호환성을 갖게한 CD-ROM 머신, "PS-X"(발매중인 PSX와는 별개)의 개발을 추진한다. 그러나 91년에 제휴가 발표되기까지는 소니 내부의 사람들에게도 그 사실이 알려지는 일은 없었다. 이데이가 말을 걸었을 때 사에키가 깜짝 놀란 것도 납득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닌텐도와의 공동전선은 곧 좌절되게 된다. 그 이유로 닌텐도는 "당시의 소프트 개발 기술에는 과대 스펙이었다", "데이터의 로딩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불법 복제의 방지책이 만전이 아니다" 등을 들고, 소니는 "노리고 있는 타겟층등의 부분에서 양사에 온도차가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유는 어떻든 닌텐도와 소니는 완전히 결별. 게임사업에서 철수할 것인가, 아니면 단독으로 하드를 개발할 것인가. 소니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때 소니의 게임기 사업을 이끌고 있던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인 쿠타라기 켄(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사장 겸 CEO, 소니 부사장)이었다. "게임사업으로부터의 철수도 어쩔 수 없다"는 상황 속에서, 쿠타라기는 당시의 소니 사장 오오가 노리오에게 가서 게임사업의 속행을 직접 담판지었다고 한다. 강한 어조로 말하는 쿠타라기를 향해 오오가 사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해봐라!」라고 외치고,「DO IT!」이라고 소리치면서 책상을 두드렸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사람은... 뭐랄까. 하드 회사 사람이 아니죠. 크리에이터. 그게 제일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84년에 소니의 아츠키 정보처리연구소에서 "시스템 G(주1)"라는 그래픽 엔진의 영상을 보았을때부터, 리얼타임으로 움직이는 3차원 영상을 사용한 게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플레이스테이션을 만들었다는 느낌일까요 (웃음)」(사에키)
이렇게 해서 쿠타라기가 이끄는 소니의 테크노크라트 군단을 중심 멤버로, 게임사업을 추진하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SCE)"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우수한 기술자가 모여 획기적인 머신을 만들어도, 그것만으로 상품이 팔리는 건 아니다. 훗날의 플레이스테이션이 태어나기 위해 또 한가지 꼭 필요했던 것이, 마루야마 시게오(현 SCE 이사)가 이끄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SME)군단이었던 것이다. 새로 CD-ROM을 미디어로 한 게임기를 만든다. 지금까지 주류였던 마스크 ROM의 비지니스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판매방법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드웨어 중심의 비지니스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의 비지니스로.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 CD의 판매에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확립한 마루야마 등의 힘이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당시 SME의 한 조직이었던 EPIC 소니 레코드가 수퍼 패미컴용 소프트를 만들고 있었다. 쿠타라기는 수퍼 패미컴 소프트를 만들고 있었던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이념, 목표로 해야 할 것을 반복해서 설명한다. 곧 기술자들은 쿠타라기의 이야기에 끌려들고, 그 소용돌이에 마루야마도 빨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SCE의 초대 사장인 오자와 토시오를 톱으로, 쿠타라기가 이끄는 테크노크 라트들과 마루야마가 이끄는 SME 군단이 하나가 된다. 그래도 모인 인원은 60명이 안 된다. "세계의 소니"에 있어서 당시 게임사업은 역시 특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60명의 "이단아"들이 게임업계를 뒤엎는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93년 10월. 시나가와에 있는 소니 본사에 일본의 게임산업을 떠받쳐 온 약 300명의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모였다. 그 자리에서 공개된 것이 유명한 공룡 머리 데모이다. 폴리곤으로 그려지고 아름다운 텍스쳐가 붙여진 티라노사우르스의 머리가 자유자재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모습에, 모인 사람들은 경탄하는 것도 잊고 잠시 말문이 막히게 된다. 그러나 행사장에 모인 다수의 소프트메이커 중에서 유일하게 놀란 표정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남코 관계자들이었다. (2편에 계속)
주1. 시스템 G : 80년대 중반에 소니가 개발한 그래픽 엔진. 3D 화상에 순식간에 텍스쳐 매핑할 수 있는 것이 특징.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전파소년」에서 출연자의 얼굴을 확대, 축소시켰던 것은 이 시스템 G이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2) 환상의 하드
하드의 발매에 [릿지 레이서]를 맞추고, 그 후에도 [철권], [에이스 컴뱃] 등 4번 타자급 소프트를 잇따라 투입(주1)했던 남코의 존재없이 오늘날의 플레이스테이션의 융성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면 남코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라이벌 머신에 대한 강렬한 어드밴티지였던 것이다.
그럼 언제부터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 비지니스와 관련을 맺게 된 것인가. 사실 소니가 신하드를 개발하고 있던 무렵, 남코는 그와 시기를 같이 해서 전혀 다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남코 독자의 차세대 하드 개발"이었다.
남코의 가정용 게임기 개발은 사실 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개발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남코의 연구개발부대를 이끌고 있었던 이시무라 시게카즈(현 남코 WMC 컴퍼니 프레지던트). 기술 부분에서 남코의 뼈대를 떠받쳐 온 인물이다.
아케이드에서는 최첨단 3D 기술분야에서 세가와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던 남코. 그러나 가정용 비지니스에 있어서는 패미컴이나 수퍼 패미컴 참가 당시의 절대적인 우위성을 잃고 있었다. 그런 당시의 남코에게 있어서 독자적인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 발매해 아케이드의 히트작을 그대로 가정에 가져오는 것은 "비원"이었던 것이다.
남코도 신하드의 미디어로는 CD-ROM을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CD-ROM 드라이브의 톱 브랜드였던 소니에게 당시의 남코 연구개발진이 접촉을 시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흐름에서 91년 초, 이시무라는 쿠타라기에게 개발중인 신하드의 데모를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선지 쿠타라기는 놀라기는 커녕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않다. 또 이 시점에서는 쿠타라기는 소니의 가정용 하드 구상에 대해서는 내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경계하고 있었던 거겠죠」
라고 이시무라는 당시를 돌아본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남코로부터 가정용 게임기가 발매되는 일은 없었다. 가장 큰 요인은 자금 문제였는데, 실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존재 또한 남코의 가정용 게임기를 "환상 의 하드"로 만든 요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93년의 발표회에 앞서 남코의 간부 몇명이 소니 본사에 초대된다. 거기에 준비되어 있었던 것은 소니가 개발하고 있던 플레이스테이션의 원형이었다.
"현재의 기술로 이런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 수 있는건가!"
거기서 본 것은 남코의 기술자들이 놀라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래도 이 회합이 끝난 뒤에 하라구치 요이치(현 남코 CT 컴퍼니 프레지던트)는 함께 출석했던 이시무라에게 「물론 우리 머신 쪽이 우수하지」 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이시무라는 딱 잘라 「아니, 저쪽이 위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플레이스테이션이 제시한 머신 스펙은 획기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남코는 가정용 게임기의 개발을 중지했다. 그리고 소니가 개발하는 이 혁신적인 머신에 전면적으로 협력할 의향이 굳어지기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93년 가을의 어뮤즈먼트 머신 쇼에서 선열한 데뷔를 장식한 업무용 [릿지 레이서]. 이 행사장에서 이시무라는 하라구치에게 「내년에는 이게 가정용이 되는군요」라고 속삭였다. 수퍼 패미컴 전성기인 이 무렵, 남코와 소니는 "차세대"의 꿈을 공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94년 봄, 폴리곤으로 그려진 빨간 자동차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시제품상에서 달리는 영상을 보았을 때, 하라구치는 "팔린다!"고 확신했다.
「몇십년이나 이 업계에서 장사를 해왔습니다만, 영상만으로 오싹할 정도의 쇼크를 받았던 것은 패미컴과 플레이스테이션때 뿐입니다. 그만큼 이때의 [릿지 레이서]의 퀄리티는 대단했죠」(하라구치)
나아가 플레이스테이션의 엔진이 범용성이 높은 것이었던 것도 남코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딱 합치한다.
「이 당시의 남코는 소형 아케이드용 광체에 탑재할 수 있는 저가의 우수한 3D 엔진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보게 된 것이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본체가 발매된 2주 뒤에 3차원 엔진을 공통으로 하는 "system 11"(주2) 기판으로 업무용 [철권]이 발매된 것은 그런 사정에서였던 겁니다」(이시무라)
이렇게 해서 플레이스테이션 진영은 강력한 파트너를 얻게된 것이다. (3편에 계속)
주1. 잇따라 투입 :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로부터 [릿지 레이서](94년 12월 3일), [사이버 스레드](95년 1 월 27일), [스타 블레이드 α](95년 3월 31일), [철권](95년 3월 31일), [에이스 컴 뱃](95년 6월 30일)을 발매.
주2. system 11 기판 : 플레이스테이션의 아키텍쳐(그 기기의 근간을 이루는 부품이나 기능의 집합)을 응용 한 남코의 업무용 기판. 후에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 2의 아키텍쳐를 응용한 "system 246"도 개발했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3) 문전박대와 유통혁명
93년 10월의 데몬스트레이션은 충격이 되어 세계의 게임업계를 돌았다. 그때까지 "폴리곤 따위", "3D 따위"라고 말하던 사람들일수록 그 압도적인 묘화능력에 깜짝 놀란다.
"게임이 변한다".
분명 이때 세계의 게임 크리에이터들에게 그런 마음이 싹튼 것이다.
최초의 데모를 마치고 한달 뒤인 11월 16일, "주식회사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가 정식으로 설립. 전술한대로 약 60명의 멤버로 전혀 노하우가 없는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회사 설립 파티 자리에서 동사의 초대 사장인 오자와 토시오는 모인 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들에게는 소니와 SME의 피가 반반씩 들어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를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는 것. 소니도 SME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자. 문화로서의 제3의 회사를 만들자"
이때의 말은 정말 마음에 사무쳤다고 사에키는 술회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을 기치로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60명의 이단아들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획기적인 하드가 있어도 거기서 돌아가는 소프트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완전히 새로운 업종이라는 점에서 SCE에게 유리한 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에서부터의 스타트였던 것이다.
「당시의 구호는 "소프트가 없으면 단순한 상자". 세가가 새로운 하드를 발표한 점도 있어, 일단 분담해서 소프트 메이커를 돌기로 했습니다」(사에키)
소프트 메이커 쪽에는 토쿠나카, 쿠타라기, 마루야마는 물론, 라이센시 창구의 책임자인 타카하시 유지, 사토 아키라(현 SCE 부사장 겸 COO), 요시다 슈헤이(현 SCEA 제작 책임자), 사에키와 그 부하들까지 동원되었다. 라이벌 진영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서도 일단 참가만이라도 표명해 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부탁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메이커의 반응은 다양했다. 남코처럼 금방 구체적인 이야기에 들어가는 메이커도 있는가 하면, 「○백만대 팔리고 나서 와줘」라고, 쌀쌀맞게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소프트 메이커를 설득하는 것과 동등한 레벨의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추가주문이 있으면 바로 출하할 수 있는 CD-ROM의 이점(주1)을 살린 유통 시스템의 정비이다.
그때까지의 마스크 ROM(주2)과 비교했을 때의 CD-ROM의 이점은 여러가지 있지만, 최대의 어필 포인트는 "리피트 (추가) 생산이 용이한 것"일 것이다. 생산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리피트 생산을 할 수 없었던 마스크 ROM의 경우는, 품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무래도 조금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메이커, 판매점 모두 불량재고의 공포에 떨게 되어 있었는데, SCE가 제시한 비지니스 모델에서는 설령 매진되어도 3일만에 리피트 생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걸 도매상이나 판매점에 이해시키는 영업담당의 노력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CD-ROM으로 함으로써 뭐가 달라지는가. 그 이점을 회사의 톱과 마케팅 부대 전원이 철저하게 말했습니다. 당시는 모두가 완전히 똑같은 설명을 할 수 있었죠」(사에키)
정말로 잘 뭉쳤다고 본다며 사에키는 웃는다. 그러나 사내의 분위기는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소니의 중핵사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0년 뒤에 소니 그룹에 있어서 이만큼 임팩트가 있는 사업이 될 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소니와는 많이 거리를 두어 온 셈입니다. 문화면에서 말이죠. 소니를 싫어하게 되었었다고 할 정도로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두가 뭉쳐 있었던 요인 중 하나겠죠' (사에키)
94년 4월, SCE는 주요 소프트메이커의 경영진, 영업, 개발 담당자를 시즈오카에 초청 했다. 이곳에 있는 CD-ROM 공장을 견학시켜, CD-ROM이 얼마나 스피디하며, SCE가 말하고 있는 것이 탁상공론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대강 공장을 보여준 뒤, 회의실로 안내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숨을 삼켰다. 사에키가 준비한 21대의 멀티슬라이드로, SCE가 생각하는 새로운 유통형태가 더듬더듬 설명되어 간 것이다.
"구체제가 뿌리 깊은 일본 게임업계의 유통을 바꾸기 위해 모든 것 을 일단 우리들에게 맡겨주길 바란다".
그것이 약 20분에 걸친 프레젠테이션의 주지였다. 그리고 그 생각에 응하듯, 참가자 전원이 맹렬히 메모를 하기 시작한다.
「이때 참가해준 모든 메이커가 우리들의 유통에 모든 것을 맡겨 주었습니다. 그 덕분 에 지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있는 겁니다」(사에키)
그들을 축복하듯 공장 주위의 벚꽃은 만개해 있었다. (4편에 계속)
주1. CD-ROM의 이점 : 그때까지 주류였던 마스크 ROM(주2 참고)에 비해 제조원가가 대폭 싸고, 용량이 훨씬 크며, 제조 스피드가 빠른등, 수많은 이점이 있다. 반대로 데이터의 로딩 시간이 긴 등의 디메리트도.
주2. 마스크 ROM : CD-ROM이 광디스크 미디어인데 반해, 마스크 ROM은 반도체를 사용한 기억장치. 데이터의 로딩은 빠르지만 CD-ROM에 비해 제조원가가 비싸고, 생산에도 시간이 걸린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4)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
시즈오카에서 공장견학이 행해진 것과 때를 같이 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본체 디자인이 거의 완성되었다. 본체의 디자인 기간은 약 1년. 수많은 폐기된 디자인 속에서 그 단색의 심플한 디자인이 완성된 것이다. 그때까지의 게임기와는 선을 긋는, 싫증이 나지 않는 참신한 디자인 (주1). 아이들이 난폭하게 다뤄도 부서지지 않는 소재를 선정 하고, 누가 봐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색을 엄선했다. 정말 세부까지 신경써 선정된 그래픽인 것이다. 불과 반년 전까지는 열몇배 크기의 투박한 상자에 주렁주렁 코드가 연결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걸 개발진은 확실하게 완성시켜 온 것이다.
하드의 목표는 섰다. 남은 것은 이 머신을 확실히 팔기 위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는 것이다. 당시의 SCE 사내용 자료를 보니 "PJ100K"라는 말이 많이 눈에 띄었다. 어떤 의미인지 묻자, 사에키는 웃으면서「발매 첫날의 출하대수 목표입니다」라고 말했다.
「"K"라는 건 1000이란 의미. 소니의 제조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죠. "PJ"는 프로젝트. 만드는 쪽은 발매 첫날까지 반드시 10만대를 만든다. 그리고 판매하는 쪽은 그 10만대를 반드시 판다. 제조와 판매 공통의 구호인 것이죠」(사에키)
훗날 플레이스테이션 2가 발매 첫날에 100만대 가까이 팔린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있지만, 과연 정말로 10만대 출하할 수 있을 것일가, 그리고 그게 팔릴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되면 SCE 사내는 벌집을 쑤신듯 시끄러워졌다. 게임 비지니스에 처음 참가하는 사람들 뿐이었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이번에 이 기사를 쓰면서 전국 의 게임 판매점에 "플레이스테이션이 패권을 차지할 걸로 생각하고 있었는가"라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YES"란 답은 소수. 그 이유로 대부분의 판매점이 "닌텐도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단 한사람, "절대 팔릴 거다"라고 확신하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그것이 당시 SCE의 개발부 부장을 맡고 있던 쿠타라기 켄이었던 것이다. 쿠타라기는 과거의 게임기의 판매실적이나 첫날의 출하대수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 게임 유저들의 강한 호기심, 강한 흡인력은 자신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결론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사에키를 비롯한 사원들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걱정스런 얼굴의 그들을 볼 때마다 쿠타라기는「문제없어」라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러나 불안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이 해 5월에 영업담당자가 게임 판매점의 이름 을 쭉 늘어쓴 모조지를 사내에 붙이고, 특약점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곳에 장미꽃을 붙여 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하드의 발매가 가까워져도 모조지는 빈곳 투성이. 결국 발매 직전이 되어서도 모조지가 장미로 완전히 메꿔지는 일은 없었다.
이런 사내의 불안과는 반대로, 조금씩 그리고 확실한 순풍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불어오고 있었다. 참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발표된 것도 딱 이 무렵. 94년 5월이다. 이름을 붙인 사람은 쿠타라기 켄 본인이지만, 실은 닌텐도와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을 때부터 이 명칭으로 불렸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니의 창업자 이자 당시 회장이던 모리타 아키오는 이 이름을 듣고「줄이면 "프레스테"인가. "스테 (일본어로 "버린다"는 의미)"가 붙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군」이라고 중얼. 이거 큰일 났다고, 사내에서는 그때부터 한달 동안 새로운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지(주2)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한다. 결국 "놀이의 컴퓨터"라는, 쿠타라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멋지게 나타낸 이 명칭으로 낙착되었지만, 자칫하면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실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이 명칭 발표에 맞추듯 참가 메이커도 날로 늘어, 다수의 소프트를 발매 시기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태어난 것이 유명한 캐치 카피,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이다. 말꼬리만 보면 업계의 모든 타이틀이 플레이스테이션에 모여든다고 볼 수도 있고, 모든 장르의 게임이 모여든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SCE가 부여하고 싶었던 의미는 전적으로 후자로, 아케이드나 PC의 게임도 간단히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지만, 많은 유저들은 "패권을 차지해 패자를 목표로 하는 멋진 카피"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보였든, 이 캐치 카피가 화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결과가 좋으면 상관없 었다」
며 사에키는 웃는데, 이 무렵부터 대담하고 화제성 풍부한 TV CF나 본 사람의 머리 위에 "!?"가 튀어나올 것 같은 캐치 카피(주3)가 주목받게 된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역사는 선전과 카피의 역사다"라고 자주 이야기되는데, 하드 발매 때부터 SCE의 선전 센스는 발군이었고, 또 이색적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를 비롯, 오랫동안 플레이스테이션의 캐치 카피를 만들어온 카피 라이터 코시모 카즈야 는,「"뭘 유저들에게 약속할 수 있는가"를 최대의 테마로 카피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카피에서 제시한 약속을 지키고, 그걸 쌓아나감으로써 유저들과의 인연을 강화 해 나간다. 바로 플레이스테이션의 행보 자체가 아닐까.
발매가 다가옴에 따라, 하드 메이커, 소프트 메이커의 사내는 전쟁터처럼 혼잡해진다. SCE의 하드 개발실은 텅 비어 있었다. 전원이 하드 생산공장에 틀어박혀, 플레이 스테이션의 최종 체크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드 개발실이 텅 빈 상황을 본 타부서의 사원들은 안도감에 싸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하드 개발자가 사내에 남아 있으면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게 된다. 아무도 없는 것이 오히려 "발매할 수 있다"는 걸 약속해 주었던 것이다.
한편 일찌감치 참가를 표명하고 동시발매 타이틀로 간판 소프트인 [릿지 레이서]를 준비한 남코는 어땠는가. 하라구치는 이 시기, 플레이스테이션과 [릿지 레이서]를 안고 전국의 유통업자들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지금까지의 머신과는 전혀 다릅니다」,「반드시 팔립니다!」... 정말 전국의 업자들을 하나 하나 돌았다. 그들의 좋은 반응과 [릿지 레이서]의 경이적인 퀄리티가 하라구치를 비롯한 남코 사원들을 맹렬히 움직이게 했다.
그러나 SCE측과 모든 것이 서로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발매 첫날의 출하목표인 10만 대가 그 대표적인 것으로, 하라구치는 10만이라는 숫자를 듣고 반쯤 맥이 빠졌다고 한다.
「수퍼 패미컴용 소프트면 100만, 200만 팔리는 것도 드물지 않았죠. 그런 세계에서 10만대로 기뻐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안됩니다. 그럼 수퍼 패미컴에게는 이길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하라구치)
그래도 남코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믿었다. 독자적인 하드를 개발한다는 꿈을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자신들의 눈을 믿었던 것이다. (5편에 계속)
주1. 참신한 디자인 : 본체의 디자인도 그렇지만, 컨트롤러도 눈길을 끄는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이 3D가 특기인 머신이라는 것도 있어, 컨트롤러의 디자인도 평면적인 것이 아니 라 "입체"를 의식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주2. 새로운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 모리타 아키오 회장의 한마디에 의해 새로운 명칭이 모색된다. 한때는 사내에 "신형 게임기의 명칭 모집"이라는 취지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주3. 캐치 카피 : 플레이스테이션은 TV CF나 광고의 캐치 카피로도 종종 화제가 되었다. "모든 게임은, 여기에 모인다"(94년 12월~95년 12월)외에도 "가자, 100만대"(95년 2월~4월) 등 참신한 카피가 게임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 출처: 주간 패미통
PlayStation 탄생전야 (5) PJ100K는 이루어졌다!
그리고 발매일을 다음날로 앞둔 94년 12월 2일. 쿠타라기와 마루야마의 제안으로 SCE는 에비스의 가든 홀로 메이커 관계자나 크리에이터들을 초대해 조촐한 발매 전야제를 개최했다. 게임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을 함께 싸워온 전우들과 함께 카운트다운하고 싶다. 그들의 이런 마음이 가든 홀에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하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맺어주고 있구나, 하는 걸 확신할 수 있었던 순간입니다」
라고 당시를 돌아보는 것은 현 SCEJ 선전부 부장인 호소야 메구미이다. 94년 6월에 SME에서 이적해온 그녀에게 있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발매는 정말 싸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미디어로부터 "게임 신참자"라고 야유당하면서도, 오히려 그걸 양식으로 삼아 출판사나 TV 방송국을 도는 나날들...
「별로 기대되고 있지 않았기에 망설임 없이 저희들다운 프로모션 전개를 꾀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라고 호소야는 말한다.
생각해 보면 판매점 앞에 적극적으로 시유 코너를 설치해 나간 것도 플레이스테이션이 처음. 이것은 주로 마케팅 부대를 구성하고 있었던 SME 출신자에 의한 시책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매장에서 상품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던 당시의 시스템은 "부자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매장의 게임 체험 코너는 매우 일반적인 풍경 이 되었지만, 당시는 실로 획기적인 시도였던 것이다. SME 출신자를 끌어모은 쿠타라기의 혜안은 이런데서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94년 12월 3일.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이 전국의 숍에 늘어서는 것이다. 발매 당시의 가격은 39800엔. 같은해 11월 22일에 발매된 세가의 "새턴"이 44800엔이었으므로, 그보다도 5000엔이나 싼 가격을 설정했다. 목표였던 10만대도 그럭저럭 갖춰졌다. 남은 것은 얼마나 팔려주느냐이다.
그 날 이른 아침, SCE의 모든 사원이 아키하바라나 신주쿠의 양판점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새 하드나 대작 소프트가 나오면 도내의 양판점에는 반드시 행렬이 생긴다. 패미컴 시절부터 있는 게임업계의 연례행사 같은 것인데, 그 상품의 인기를 아는데 있어서 가장 직접적인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사에키는 우선 신주쿠에 있는 요도바시 카메라로 향했다. 아키하바라에 필적하는 행렬 장소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게임 팬들이 추운 겨울 하늘 아래 늘어서 있을 것인가?
그러나 늘 게임을 팔고 있는 매장에는 전혀 손님의 모습이 없었다. 행렬의 규모는 작아도 누군가 서있을 걸로 믿고 있었던 사에키에게 있어서 이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문득 가게 옆 골목으로 눈길을 향하자, 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보통 그런 장소에 사람들이 모이는 일은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보니, 그곳이야말로 이 날을 위해서만 마련된 "플레이스테이션 특설매장"이었던 것이다.
행렬은 경이적인 길이였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게임 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쯤 멍하니 행렬을 바라보던 중에 그렇게 생각되기 시작했다. 꼭 구입한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사에키는 신주쿠역의 지하에서 플레이스테이션 꾸러미를 든 아이들에게 옆에서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쉽지 않았다.
「아이들 쪽에서 보면 모르는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거는 셈이니까 무서운 건 당연하죠. 하지만 꼭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명함을 건네고 이 게임기를 만든 회사의 사람이라고 알려주고 나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웃음). 그래도 그들은 다들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슴에 꼭 안고서 절대로 놓지 않겠다, 라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무엇보다도 기뻤죠」(사에키)
사에키는 그 길로 아키하바라로 향했다. 거기서 만면에 웃음을 띄운 쿠타라기를 만난다. 아키하바라에서 합류한 SCE의 임원 몇명은 함께 아키하바라에 있는 스테이크 가게에 들어가, 조촐한 축배를 들었다. 그 가게에서 제일 비싼 스테이크를 쿠타라기가 전원에게 대접했다. 정말 기쁜듯한 웃음이 쿠타라기의 얼굴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6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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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Station 탄생전야 (6) 시대가 변한다, 바람이 분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의 플레이스테이션 인기에 예상도 어긋나 버린다. 첫날에 출하한 10만대는 순식간에 매진. 소프트와 달리 하드는 그렇게 간단히 추가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완전한 물량 부족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팔릴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라고 SCEJ 프로덕트 마케팅부 과장인 하 야시 유키코는 당시를 돌아보는데, 그만큼 플레이스테이션의 매상은 대단했다. 결코 오버한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순식간에 전국의 매장에서 "소멸"해 버린 것이었다.
이것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남코의 [릿지 레이서]의 판매량이다. 놀랍게도 하드의 출하가 10만대인데 반해 [릿지 레이서]는 15만장이나 팔린 것이었다. 즉 5만명의 유저가 하드의 재출하를 기다리지 못하고 소프트를 먼저 구입해 안달하고 있다는 것. SCE도 남코도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발매의 임팩트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우선은 어쨌든 100만대를 파는 것. 스타트는 거기서부터라고 사에키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세워진 것이 95 년 2월~4월의 캐치 카피, "가자, 100만대"였다.
「100만대라는 숫자에 매우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패해 사라져간 무수한 하드들의 분수령이 이 숫자였던 겁니다. 100만대를 넘기는 하드는 살아남는 하드다. 그러니 발매일에 구입해준 코어 유저분들도 안심하길 바란다. 그런 메시지였던 겁니다」 (사에키)
95년 7월에는 이미 가격 인하를 감행. 이게 효과를 본 건지 발매한지 1년이 지난 95 년 12월에는 출하대수가 200만대를 돌파, 라이벌 진영에 차이를 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96년 1월 31일. 하드를 승리로 이끄는 힘을 지닌 킬러 소프트를 데리고 스퀘어 (당시. 현 스퀘어 에닉스)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투입되는 타이틀은 [파이널 판타지 VII]. 에닉스(당시. 현 스퀘어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에 필적하는 힘을 지닌 RPG의 양대 브랜드 중 하나가 플레이스테이션에 정식으로 도입 되게 된 것이다.
이 날을 경계로 플레이스테이션은 독주를 시작한다. 완전히 유저의 신뢰를 얻어낸 하드는 얼마나 강한가. 내세우는 캠페인은 전부 화제가 되고, 96년 8월에 발매된 스퀘어의 격투 게임 [TOBAL No.1]에는 [파이널 판타지 VII]의 체험판이 동봉. 플레이스테이션 유저들을 열광케 한다. 나아가 97년 1월에는 에닉스가 [드래곤 퀘스트 VII]을 플레 이스테이션에 투입하는 것을 정식으로 표명. 양대 브랜드를 손에 넣은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세는 이미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시대는 확실히 움직였다. 아무도 바꾸지 못했던 게임업계의 세력도는, 불과 60명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혁명에 의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이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의 탄생에서 승리까지의 거짓 없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플레이 스테이션이 패권을 쥐게 했는지, 너무 많은 요소가 있어 하나를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이 질문을 사에키에게 던져 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순풍이 휘잉 불어 온 거겠죠. 하드가, 그리고 시대가 변한다는 바람이. 이 바람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운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과거 마루야마씨가 종종 말했었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운이 없으면 안된다고 (웃음). 이거 무거운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사에키)
시대의 격류는 멈출 줄을 모른다. SCE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UMD (유니버설 미디어 디 스크)"라는 미디어를 이용한 신형 하드 "PSP"가 2004년 연말에 등장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이 플레이스테이션2로 진화했을 때와는 또 다른, 미지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다...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완결)
- 출처: 주간 패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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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비록 개인적으로는 UMD를 이용한 PSP를 그리 성공확율이 높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저들의 추진력과 나름대로 쌓아온 노하우가 어떻게 전개되서 제 예상을 확 깨줄지도 앞으로 지켜볼 일이겠죠. 이 시대에 살아가는걸 멋지게 생각중~